기고

[월요칼럼]넘지 말아야 할 선(線)

김연희 상지대 FIND칼리지 조교수

지난 여름, 최악의 폭염과 열대야만큼 뜨거운 논란과 피로감을 일으킨 건 대통령의 인사였습니다. 대통령의 인사에서 참신함과 감동을 포기한 지는 오래지만, 그래도 실낱같은 기대와 희망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한숨과 탄식이 나옵니다. 그간에도 ‘극우’와 ‘유튜버’가 핵심 인사 코드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는데, 이제 ‘친일’과 ‘뉴라이트’까지 가세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근거 없는 억측이라고 하기엔 임명된 인사들 간에 두드러지게 공통된 역사관이 보입니다. 방송장악 의지가 다분히 보이는 이는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되어 ‘뉴라이트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소신을 밝히고, 노조 혐오를 부추기며 반노동적 사고를 보여 온 노동부 장관 지명자는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망언을 뱉고도 당당히 장관에 임명됩니다.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가 주목적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임명인은 넘치는 성 소수자 혐오 발언과 ‘차별금지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기이한 논리도 버거운데 1948년 건국을 주장한 이력이 있습니다. 하기야 일제강점기 징용과 위안부 문제에서 강제성을 부정하는 '반일 종족주의의'의 공동 저자가 한국학 진흥 및 민족 문화 창달을 주요 연구과제로 삼는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임명되었으니, 취임 일성으로 ‘친일 인사들의 억울함을 가장 먼저 들여다보겠다’는 뉴라이트계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임명자들의 면면과 발언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뉴라이트’의 약진이었습니다. 그동안 ‘1948년 건국’을 주장하거나 일제의 곡물 ‘수탈’을 ‘수출’이라고 떠들거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임의단체’로 깍아내리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학문의 자유’로서 보장되는 최소의 범위를 넘어서 공론화되거나 대중화되기는 어려운, 극소수 우파의 친일 사대적 사관이라고 일축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이들이 주요 공직에 진출하여 뉴라이트 사관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파급력이 큰 언론 매체는 이들의 발언을 비판도 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역사를 귓등으로라도 듣고 배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제강점기를 합법화하고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을 절대 용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1919년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시작이며 1945년 8월15일은 광복,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일로 역사 시간에 분명하게 배웠을 것입니다. 당연히 3·1절과 광복절만큼은 정파와 진영에 상관없이 한뜻으로 독립운동과 독립 유공자를 기리고,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며 발전적인 한일관계를 모색해온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헌법 전문에도 수록되어있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문화와 사상을 관장하는 기관의 수장에 앉아, 행여 우리가 알고 있는 ‘뻔한 역사’를 ‘다툼의 여지가 있는 역사’로 몰아 역사 왜곡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책임 있는 인사들은 대통령의 인사를 방어하기에 급급해 뉴라이트계 인사들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쯤 되니, 요즘 부쩍 ‘독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서울 지하철과 용산 전쟁기념관의 독도 모형물 철거 논란도 개운치 않은데, 올해 들어 훈련 규모가 축소되고, 일부 훈련은 아예 실시하지도 않았다는 ‘독도방어훈련’ 소식은 더욱 심란합니다. 지난 광복절 즈음, 제품 포장지에서 독도 그림을 빼면 막대한 물량을 주문하겠다는 일본 기업의 제안 거절로 경영난에 처한 우리 중소업체에, 네티즌들이 다량의 주문 공세를 펼쳐 ‘돈쭐’을 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 국민의 정서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인사가 망사(亡事)가 되어간다 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습니다. 역사와 독도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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