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춘추칼럼]내 얼굴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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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앞산에서 꾀꼬리 한 마리가 울고 있다. 저 울음소리는 무엇인가 정겨운 갈망이 느껴진다. 마을 뒷산에서도 꾀꼬리 한 마리가 앞산 꾀꼬리와 같은 소리로 운다. 울음을 주고받다가, 앞산 꾀꼬리가 내 머리 위를 지나 뒷산으로 노랗게 날아간다. 그때다. 뒷산에서 울던 꾀꼬리가 밤나무 숲에서 나오더니, 둘이 만나 이장네 집 지붕을 넘어 남산으로 날아간다. 새들은 표정이 없다. 몸짓이나 소리로 뜻을 전한다.

강 건너 밭으로 갔다. 고추밭 사이로 걸어갔다. 밭 끝에는 아내가 재작년에 심어놓은 어린 단감나무가 있다. 아내가 감나무가 죽었는지 잘 사는지 궁금해할 때마다, 가보겠다, 가보겠다, 해놓고 또 잊어버리며 한 봄 한 여름이 다 갔다. 어린 감나무 두 그루 제법 의젓하다. 길어 나간 새 가지에 감을 몇 개씩 달고 있다. 잎이 두껍고 윤기가 난다. 지난해 겨울의 추위로 감나무들이 많이 죽었는데, 어린 감나무 감 얼굴이 볼수록 야무지다. 곧 붉어질 것이다. 자연의 얼굴은 무궁하다.

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신문을 9개 정도를 클릭해서 본다. 사설, 칼럼, 기획 기사, 건축, 그림 전시 기사, AI 기사, 연예, 영화, 축구 명장면, 인구문제, 지역소식, 정치평론가들의 글이나, 정치인들의 인터뷰 기사들을 챙겨 읽는다. 좋은 글은 복사해 따로 저장해둔다. (이건 내 하루 시작 루틴이다.) 내가 제일 관심이 있게 보는 것은 정치인의 말이다. 정치인의 언어 동원능력과 선택한 그 언어 개념의 범위, 어휘 사용 기술은 그 사람의 정치적인 역량과 능력, 인간성을 가늠하는 잣대다.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과 신념이, 어디까지인지 짐작하게 한다. 정치인들이 입고 있는 옷, 머리 모양, 안경, 얼굴 표정, 걷고 서 있는 자세, 눈빛, 손짓은 그 사람의 정치력 확장 가능성을 믿게 해준다.

이제 일기를 쓰고 내가 써놓은 시를 검토할 차례다. 일기를 쓰려고 화면을 펼치다가 우연히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페리클레스(BC 495(?)~BC 429년)라는 그리스 정치가가 기원전 413년에 전몰자들을 추도하는 장례식 연설문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이웃나라의 관행과 전혀 다릅니다. 남의 것을 본뜬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남들이 우리의 체제를 본뜹니다. 몇몇 사람이 통치의 책임을 맡는 게 아니라 모두 골고루 나누어 맡으므로, 이를 데모크라티아(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개인끼리 다툼이 있으면 모두에게 평등하게 법으로 해결하며, 출신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에 따라 공직자를 선출합니다. 이 나라에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서 인생을 헛되이 살고 끝나는 일이 없습니다. (...) 우리는 전 헬라스(그리스)의 모범입니다.” (출처: 네이버에서 함규진의 세계 인물사)

마치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님이 우리 소원을 말하는 것처럼 온화한 표정과 말투가 느껴진다. 자기 진영에 갇힌 철 지난 낡은 말이나, 아는 것 없어 보이는 거친 언사로 남의 흠이나 헐뜯는 거친 말이 아닌, 시대를 정리한 ‘시대의 말’, 품격 있는 ‘정치적’인 정치인의 말을 우린 기다린다. 우리 인류가 가장 잘 선택한 말 중에 ‘민주주의’라는 말과 ‘정치’라는 말을 대체할 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 선택이 아닌 인간의 선택인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표정’은 그 시대를 사는 ‘공동체의 표정’을 결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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