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정미소 옆을 지나면 왕겨가 눈 오듯 쏟아져 내리는 풍경을 자주 접했다. 왕겨가 수북이 쌓이면 풍구 돌리며 난방 땔감으로 또는 축산농가 축사 바닥에 깔아 배설물을 유기농 거름으로 생산하는 소중한 재활용 부산물로 각광받았다. 이처럼 벼를 도정할 때 나오는 농업 부산물인 왕겨는 농토의 물 빠짐을 좋게 하는 데다 썩은 이후에는 거름 등으로 활용 가치가 높았지만 최근 들어 처치 곤란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육우 양계 등 축산농가에서는 축사나 양계장 바닥에 왕겨 대신 수입 톱밥을 깔고 있다. 자치단체와 축협에서는 수입 톱밥을 이용하는 축산농가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가축 배설물 처리에 과연 외화를 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시점에 이르렀다.
수입 톱밥을 사용하는 축산농가에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긍정적인 부분으로는 축산농가의 부담을 덜어주고 이용의 편리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국내에서 연간 약 80만톤씩 발생하는 왕겨를 두고 꼭 톱밥을 수입해 사용하면서 엄청난 외화를 써야만 하는지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3년 전부터 국내 왕겨 재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왕겨는 순환자원심사 절차 중 공정·설비 검사, 유해물질 함유량 분석 등 서류 제출도 면제됐다. 최소한의 서류 심사와 현장 육안검사만 받으면 된다. 또 일반차량 운반이 가능해졌고 활용 가능 용도에도 제한이 사라졌다. 이에 왕겨·쌀겨가 비료와 사료뿐만 아니라 철강보온재, 화장품 첨가제 등으로도 활발히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정부는 부숙 왕겨(축분)와 일반 왕겨를 퇴비로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해 자원순환 차원의 가치를 높이는 데 비중을 뒀으면 한다.
농촌진흥청에서는 미생물을 사용, 왕겨와 가축분을 혼합해 음식물 쓰레기(유기성 폐기물)를 분해하게 되면 냄새의 원인을 약 90%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사용 완료된 미생물 혼합제는 현재 시판되는 가축분 퇴비보다 유기물 함량이 5% 정도 높아 퇴비로서의 활용도가 충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Eco-recycle(자원순환)’로써의 가치가 충분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왕겨의 장점은 공극성 즉, 통기성 향상에 좋으며 수입 톱밥보다 원료 수급의 편리성이 있다. 정부가 ‘왕겨 순환자원 인정 활성화 방안’을 시행하고 있으나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이에 정부는 더욱 적극적인 제도 시행으로 유해성이 적고 자원으로서 활용 가치가 높은 국내 왕겨가 더욱 활발히 활용될 수 있도록 더 많은 제도적 관심과 지원을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