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언대]119 구급대원은 느린 사람들인가?

최일순 소방위(횡성소방서 둔내119안전센터)

26년간 119구급대원으로 근무한 필자는 아내의 복통으로 119구급대를 호출한 적이 있다. 술을 마신 상태라 직접 운전할 수 없었기에 근처 119구급대에 요청했다. 곧바로 도착한 119구급대원 중 팀장 대원은 아내에게 질문하며 상태를 파악했고 다른 대원들은 생체징후를 측정했다.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필자는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119구급대원들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 일반인들도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아마 이런 심정이리라 생각했다.

119에 신고한 나, 환자인 아내, 출동한 119구급대원, 구급차량은 모두 응급의료서비스 체계의 구성 요소이다. 응급의료서비스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 보호를 위한 국가적 체계로, 조직의 효율적 운용과 국민에게 만족도 높은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의학적으로는 병원 전 응급의료를 확대하고, 사회적으로는 복지제도를 향상시킨다.

국내 응급의료서비스 체계는 1979년 야간 응급환자 신고센터 운영으로 시작되었으며, 초기 119구급대는 재난현장 응급환자 이송에 중점을 두었으나 최근 119구급대원 자격요건 확대로 의학적 지식과 술기가 발전하면서 사고 현장에서의 응급치료와 환자 이송 중 응급의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내 응급의료 체계에서 응급환자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즉시 응급처치가 필요한 위급한 상태의 환자로 정의되며, 이들의 중증도 분류를 위해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TAS)가 개발되었다. KTAS는 환자 이송의 효율성을 높이고 의학적 근거를 제공하며, 환자 상태 평가와 진료 우선순위 결정, 잠재적 응급환자 선별에 활용되고 있다. 또한 병원 전 단계에서도 Pre-KTAS가 운영되어 응급실 의사 및 간호사와의 의사소통과 환자 이송 체계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빠름과 느림, 과연 어떤 것이 적절한 것인가?

독일 드레스덴 기술대학의 '디르크 헬빙' 교수와 헝가리 에트보스 대학의 '타마스 비첵' 교수가 개발한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공포와 겁에 질린 군중들의 행동을 컴퓨터 모의실험을 통해 분석하여, 공공시설을 보다 안전하게 설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특히 사람들이 빨리 출구로 나가려고 할수록 오히려 빠져나가는 속도가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빨리 가려는 사람들이 부상을 당해 넘어지고, 넘어진 사람들이 또 다른 장애물이 되어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모의실험을 한 결과,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45초 동안 90명이 초속 1m로 방을 빠져나갈 수 있지만, 초속 5미터로 나가려고 하면 서로 몸을 부딪쳐 65명밖에 나가지 못했다. 또 화재 등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200명 중 5명이 쓰러지고, 쓰러진 부상자들이 장애물이 되어 결국 44명만이 빠져나왔다.

위 실험의 결과가 많은 인원이 서두르면 전체의 흐름이 늦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운동장, 공공시설, 지하철 등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모바일 시대를 살고 있다. 속도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빨리’를 선호하지만, 다른 이들은 느린 삶을 추구하며 정서적 안정을 얻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느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빠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적절한 속도를 찾아야 한다. 모든 상황에는 그에 맞는 최적의 속도가 존재한다. 특히 119구급대원의 경우, 빠르게 움직이는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속에서 구급 현장에서 그들의 속도가 느리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실수를 줄이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다. 우리는 이들의 노력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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