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암 전이됐는데 수술 취소…간 이식으로 넘어갈까 두렵고 무서워" 환자들, 치료시기 놓칠까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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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가동률 절반 밑으로…진료 축소 갈수록 늘어
마취 못해 수술 미루고 전공의 찾아 수백km '뺑뺑이'
남은 의료진 업무 가중으로 환자 생명 위협받는 지경

[사진=연합뉴스]

속보="암이 전이돼 수술 예정이었는데 취소됐다. 시기를 놓쳐서 간 이식으로 넘어갈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대규모 병원 이탈로 수술 취소와 진료 축소가 갈수록 늘어나면서 '의료공백'으로 인한 환자들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지만, 대다수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병원마다 마취과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대거 미루고 외래 환자를 받지 못하는 등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주요 대형병원은 전공의들의 대규모 이탈에 따라 전체 수술을 최소 30%에서 50%까지 줄인 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공의들은 환자를 직접 수술하거나 진료하진 않지만, 교수의 수술을 지원하고 환자 상태를 관리하는 필수 역할을 하고 있어 이들이 없으면 수술, 진료 등에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강원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 30분께 강원 양양군에서 당뇨를 앓는 60대 A씨가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괴사가 일어나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구급대는 강릉아산병원에 유선으로 진료 가능 여부를 문의했으나, 병원 측은 당시 응급실에 A씨를 진료할 수 있는 전공의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의 이송을 권유했다.

강릉아산병원뿐만 아니라 속초와 강릉지역 병원 모두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은 구급대는 영동권이 아닌 영서권으로 핸들을 돌렸다.

수백㎞를 떠돌던 A씨는 119에 도움을 요청한 지 3시간 30분 만인 오후 3시가 돼서야 겨우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전국 종합병원 응급실 대부분은 중증·응급 환자 위주로 축소 운영되고 있다.

울산지역에서도 암 수술 후 수시로 입원해온 환자가 입원하지 못하거나, 항암치료 중 소변줄이 끊어졌는데 의사가 없어 내원하지 못하는 등의 사례가 속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술 일정이 미뤄지는 것은 물론, 신규 외래진료 예약을 받지 않은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부산대병원은 마취과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는 바람에 하루 평균 90∼100건가량 이뤄지던 수술 건수가 급하지 않은 수술 중심으로 30%가량 줄었다.

외래진료도 일부 과의 경우 입원하는 환자를 돌볼 여력이 안 돼 신규 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인 부산대병원을 찾는 신규 환자 대부분은 중증 증세를 보여 외래진료가 통상 입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수원 성빈센트병원도 정형외과 등 주요 진료과의 신규 외래 진료 예약을 중단했으며, 일부 수술 일정을 뒤로 미루고 있다.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곳곳에서는 이날 의료진들이 인력 배치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의료진이 부족해 매주 수·목요일 외과 진료를 받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병원 현장에 남은 전문의 등 다른 의료진들은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채우느라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전국 주요 병원에서는 그동안 전공의들이 담당했던 회진과 약 처방, 야간 당직 등을 전문의가 맡아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상급병원에서 진료받지 못한 환자들이 하급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하급병원도 긴장하고 있다.

이날 270여 병상을 갖춘 2차 의료기관인 광주 광산구 한 종합병원에는 진료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내원객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전날에는 하루 평균 200여명이던 내원객이 두배가량 늘기도 했다고 이 병원 관계자는 전했다.

다행히 아직 환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혼란스러운 상황은 없었으나, 상급병원에서 진료받지 못한 환자들이 언제든지 몰려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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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병원 등 서울 시내 대형병원도 비상 체제로 운영하지만 차질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서울대병원은 수술을 연기하고, 신규 진료 예약을 줄이면서 전공의 이탈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기존 환자의 예약은 최대한 소화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취소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병원도 파악하고 있다. 진료과별로 매일 상황을 확인하며 조율 중이다.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술을 절반으로 줄인 조치를 지속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수술실 22개 중 10개만 운영 중이다. 가동률이 50%도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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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서울병원은 전공의 이탈로 이날 수술의 40% 이상이 연기될 것으로 봤다. 서울성모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역시 수술을 30%가량 축소했다.

서울아산병원은 환자 피해를 고려해 최대한 할 수 있는 수술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다음 주부터는 감소 폭이 더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신규 환자의 외래진료 예약도 크게 줄였다.

전공의 이탈이 길어질수록 지금보다 수술이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현재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정상적으로 하더라도 전공의가 없는 탓에 대기시간도 계속 길어지고 있다.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는다는 한 폐암 환자는 "20일에 다녀왔는데 대기가 엄청나서 정말 하루 종일 있었다"며 "지방에서 올라와 아침에 도착했는데, 오후 6시에야 끝났다"고 전했다.

각 병원은 전공의의 빈 자리를 전임의와 교수 등을 동원해 채우고 있다. 야간 당직 등에 교수를 배치하고 있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직장암 3기로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항암 치료가 종료된 지 두 달 만에 암이 간으로 전이돼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는 한 환자는 극심한 불안을 호소했다.

이 환자는 "지난 20일 입원, 21일 수술 예정이었는데 취소됐다"며 "시기를 놓쳐서 간 이식으로 넘어갈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섭다"고 했다.

또 다른 위암 환자는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 속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129센터에 접수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이 억울함과 속상함을 어쩌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빅5' 병원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중환자실이나 응급의학과는 우선순위로 인력을 지원해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며 "가장 큰 문제는 남아있는 의사들의 번아웃(소진)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이 고비가 될 수 있다"며 "그 이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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