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눈부신 경제성장. 한강의 기적으로부터 시작된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세대 갈등’은 자연스레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부작용으로 자리 잡았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서로 다른 사회·정치·문화적 경험은 좀처럼 융화되지 못한 채 세대 간 갈등의 골만 깊게 만들어 왔다.
그랬던 한국 사회에서 최근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동일한 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듯 같은 세대. ‘X세대’와 ‘MZ세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X세대와 MZ세대는 옷차림부터 휴대전화 속 가요 플레이리스트, 전자기기까지 일상의 다양한 아이템을 공유하며 ‘XMZ세대’로 함께 묶이고 있다.
■‘X세대’와 ‘MZ세대’=X세대(Generation X)는 베이비붐 세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 1971~1984년 사이에 태어난 연령층이다. 자유분방하며 개성이 넘치는 스타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번화가 거리를 주름 잡았다. 브릿지 염색, 배꼽티, 미니스커트, 밀리터리룩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Y2K(Year 2000)’ 패션을 유행시켰다. 이 시기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필두로 1세대 아이돌이 등장해 팬덤 문화를 형성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20세기말 음악 시장이 자리 잡기도 했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다. X세대와는 최대 서른살 이상의 나이 차이를 보이는데, 최근 들어 X세대의 문화를 답습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MZ세대의 주요 소통창구인 SNS를 통해 현대적 감각과 개성이 결합된 Y2K 패션 트렌드를 이끌었고, 이는 자기표현 욕구가 강한 MZ세대의 이목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이에 더해 X세대가 즐겨 들었던 20세기말 인기가요의 원곡과 리메이크곡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겨울에는 캠코더카메라 화질로 제작된 아이돌 그룹 ‘뉴진스(NewJeans)’의 인기곡 ‘Ditto’의 뮤직비디오가 대흥행의 물결을 타면서 X세대가 애용했던 레트로 전자기기가 각광을 받고 있다.

■엄마 옷 꺼내 입어도 되겠네…‘Y2K’ 패션의 재유행=권지현(여·23·춘천시 퇴계동)씨는 부모님의 20대 시절이 담긴 가족사진첩을 펼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패션이 요즘 대학생들과 비교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것. 1997년 3월 봄눈이 내리던 날 촬영된 사진 속 권씨의 어머니는 고동색 블레이저 재킷과 6부 반바지에 벨트, 롱부츠를 매칭했다. 며칠 전 권씨가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카페를 찾았을 때 친구들이 찍어준 사진 속 패션과 판박이었다. 오직 다른 것은 두 사진이 촬영된 시점이 27년이나 차이가 난다는 점 뿐이었다. 요즘도 권씨와 또래 친구들이 참고하는 스마트폰 패션 앱에는 X세대가 즐겨 입었던 청·청패션, 발레코어, 카고바지, 로우라이즈 등의 스타일과 헤어 스크런치, 하트 목걸이를 비롯한 Y2K 패션소품이 인기 검색어를 독차지하고 있다.

■조카와 삼촌이 함께 듣는 세기말 인기가요=김영태(47·강릉시 교동)씨는 친척들과 펜션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조카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가수 김경호의 노래 ‘금지된 사랑’을 듣고 반가움과 의아함이 교차했다. 2002년생인 조카가 태어나기도 전인 1997년에 발매된 노래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김씨의 조카는 최근 가수 이승기가 편곡해 부른 금지된 사랑 무대를 유튜브로 시청한 뒤 김경호의 원곡까지도 즐겨 듣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김씨의 경험담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 아이돌 그룹 ‘NCT DREAM’이 1세대 아이돌 ‘H.O.T’의 명곡 ‘Candy(캔디)’를 26년만에 리메이크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해당 곡은 발매 당시 각종 음원 차트 상위권에 안착했으며, 이달 9일 기준 유튜브 누적 조회수 5,000만회를 앞두고 있다.

■뉴진스가 불러 일으킨 ‘레트로 전자기기’ 열풍=박경서(여·27·춘천시 퇴계동)씨는 지난 추석 연휴 방문한 조부모님댁에서 뜻밖의 횡재를 맞았다. 어머니께서 20대 후반 시절에 사용하던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발견한 것. 인기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인기곡 ‘Ditto’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캠코더카메라, 필름카메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기법이 유행을 타고 있다. 이에 최근 10~20대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사용하셨던 카메라를 수리점에 맡겨 다시 사용하거나 중고장터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으면서까지 구입하는 추세다. 평소 해외여행을 즐겨 떠나는 박씨는 어머니의 카메라들로 20세기말 감성이 물씬 풍기는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자신의 개인 블로그를 예쁘게 꾸며볼 계획이다.
■문화 공유로 세대 공감 끌어내는 ‘XMZ세대’=코로나19 이후 다양한 문화와 아이템을 공유하고 답습한 X세대와 MZ세대는 30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세대 갈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세대가 동일한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단순히 유행이 겹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김재훈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신세대의 새로움(New)과 기성세대의 복고(Retro)풍이 합쳐진 ‘뉴트로(Newtro)’ 열풍을 통해 MZ세대가 부모 세대인 X세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잦아지고 있다”며 “기성 세대의 문화와 특징을 신세대의 가치관에 맞게 흡수하고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뉴트로 열풍과 같은 문화 공유는 세대 공감과 화합을 끌어낼 수 있는 접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