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86%, 85%.
2021년부터 올해까지 돗토리현의 의사 충족률을 나타내는 숫자다. 2023년 기준 현 전체의 충족률은 85%, 지난해보다는 다소 하락했으나 2년 전이던 2021년 83%보다는 상승한 수준이다. 산간지역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고질적인 부족이 이어지고 있는 중부지방의 경우 69%에서 73%까지 올랐다.
그렇다면 강원자치도와 도내 각 권역, 시·군별로 부족한 의사 수는 몇 명이고, 충족률은 얼마일까? 아쉽게도 강원자치도는 이에 대한 자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국내 보건·의료계 전문가들이 각각 자신의 시야에서 산출한 자료가 있을 뿐이다.
취재팀은 지역 의료자원의 과부족을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힘에 주목했다. 지역 스스로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특별자치도' 시대 강원자치도가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돗토리현의 '차질 없는 필수의료' 를 이끄는 중심 역시 돗토리현청 의료정책과였다.

■정부보다 '한 발 먼저' 나서는 '책임성'
2020년 기준 돗토리현의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는 314.8명, 일본의 수도 도쿄(320.9명)와 불과 6.1명 차이다. 같은 시기 강원특별자치도의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는 157명, 서울특별시 306명과는 무려 149명 차이다. 도쿄와 돗토리현 사이 격차의 24배 수준이다.
한때는 돗토리현 역시 심각한 '의사 부족' 현상을 겪었다. 고도성장기 이후 자원과 사람이 모두 도쿄로 향하는 '수도권집중'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지역 곳곳에서 아우성이 커지자 현은 의사양성확보장학금, 긴급의사확보대책장학금, 임시특별의사확보대책장학금을 만들고 직접 의사 유치에 나섰다. 일본의 47개 광역지방자치단체가 공동 운영하는 공공의과대학을 포함하면 총 네 가지의 지역 맞춤형 의사확보 제도가 있다. 네 가지 제도는 모두 주민들의 필요에 응답하고자 노력한 '책임성' 의 산물이다.
이 중 가장 오래된 의사확보제도인 '지역정원제' 유형에는 1년에 1,200만원에서 1,800만원 (120만엔에서 180만엔) 사이의 장학금을 받고 최대 9년간 지역에서 근무하는 조건이 있다. 전국적으로는 2008년부터 시작됐지만 돗토리현에서는 돗토리 의대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2년 앞선 2006년부터 도입됐다.
빠른 도입에는 사정이 있었다. 그로부터 2년 전인 2004년부터 일본의 인턴 수련제도가 바뀌면서 각 지역 대학을 졸업한 신규 의사들이 도쿄 등 수도권의 수련병원을 대거 지망하게 된 것. 국가 차원의 정책에만 의존해서는 지역 의료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쿠이 히사시 돗토리현 의료정책과장은 "2004년에 제도가 바뀌자 1년에 50여명이었던 돗토리현내 인턴의사가 20명 정도로 줄었었다" 며 "젊은 의사선생님을 빨리 확보해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정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만능열쇠는 없다
첫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현에는 여전히 의사가 많이 부족했고, 돗토리대 뿐 아니라 전국 다양한 대학에 흩어져 있는 지역 출신 인재들을 모을 방안이 필요했다. 바로 다음 해인 2007년부터 현 외 의과대학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정원제를 병행한 이유다.
이후 다양한 수요에 맞춘 장학제도가 도입되고, 현에서 일할 예정인 의과대학생들이 점차 늘자 현내에서 일하고자 하는 예비의사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현은 보다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를 위해 2013년부터 돗토리현과 돗토리대부속병원에 '돗토리현지역의료지원센터'를 설립하고 현 건강의료국장과 돗토리대부속병원장이 공동 센터장을 맡기로 결정했다.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어떤 의료와 돌봄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지역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커리어 형성을 지원하는 기구다. 지역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 뿐 아니라 의과대학생들과도 교류하며 세심한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 ‘돈’ 말고, ‘커리어’ 바라보며 지역 찾는 의사들
‘소득’ 이외에 충분한 진료와 수술 경험을 쌓고, 지역에서 근무하는 자부심을 키워주는 시스템 또한 지자체의 중요한 역할이다. 의사 인력은 경력관리를 핵심적인 일자리 선택 요인으로 삼고 있는 만큼 지방정부의 장기적이고 촘촘한 관리가 핵심이다. 공공병원은 중증질환 진료 빈도수가 높고 대학병원보다 더 다양한 환자를 접할 수 있어 젊은 의사들이 민간병원보다 선호하는 커리어패스고, 공공의대 또는 지역인재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할 경우 공무원과 같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어 꾸준한 수요가 있다. 강원자치도에서도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지방정부 주도로 지역 의사들에 대한 경력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보조적으로는 ‘진료전담 공무원’ 을 비롯, 권한을 활용해 촘촘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돗토리대부속병원 지역의료교실의 타니구치 신이치 교수는 "의사 인력 유치를 위해서는 지역의료에 뜻을 가지고 있고 지역에서 종합적인 진료 역량을 키우고 싶어하는 의사들을 발굴하고, 지역이 앞장서 커리어를 지원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감의 비결, 튼튼한 자치
장면 하나. 2020년 5월 1일, 일본 정부의 코로나19 비상조치가 해제되기 전이었지만 돗토리현은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됐던 학교 수업을 재개한다는 자체 방침을 내렸다. 일본에서 코로나19 시기 학교 수업을 재개한 지역은 돗토리현이 처음이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고려할 때 현내에서는 감염의 위험보다 학교 수업 중단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더 크다는 판단이었다. 이미 이로부터 한달 전 돗토리현은 현내 의원의 80%를 코로나19 진료 의뢰기관으로 포섭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눈길을 끌었다. ‘벽오지’ 라고 불리던 지방자치단체의 자신감은 지역과 주민을 누구보다 잘 아는 데 있었다.

장면 둘. 2015년 3월, 일본의 47개 지방자치단체는 일제히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지역의료구상 계획안에 반발하고 나섰다. 지역의 급성기 병상 수를 줄여야 한다고 규정한 후생노동성의 가이드라인이 실제 주민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당시 후생노동성은 일본의 고령화 등 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각 지역의 병상 수를 줄일 것을 요청했다. 돗토리현의 경우 당시 7,152개(정신병동 제외)의 병상을 2025년 3월까지 5,896개까지 줄일 것을 요구받았다. 돗토리현도 즉각 대응책을 마련했고, 결국 "정부가 내놓는 수치는 참고수치에 불과하다" 는 결론을 자체적으로 내렸다. 주민들을 위해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행정에 따를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일본의 강력한 지방자치가 튼튼한 지역의료를 지탱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은 지방자치가 이미 잘 돼 있어 분권적 정책이 가능하다"는 일각의 선입견과 달리 '주민의 삶'을 위한 자치 뒤에는 지방정부의 끝없는 결단과 주민들의 의지가 있다.
고도성장기 이후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은 자원과 물자가 도쿄로 집중되는 심각한 '수도권 집중' 현상을 맞닥뜨렸다. 일본이 세계 2위 규모의 경제 대국 자리를 차지했던 시절이니, 도쿄라는 도시에 대한 선망은 현재의 서울보다도 컸다.
그런 '수도권쏠림'을 해결한 것은 정부도, 시장도 아닌 ‘지역’과 ‘주민’ 이었다. 생활과 가까운 의제에서부터 지역 주민들이 형성한 자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었고, 지방정부에 적극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지역의 필요를 설득하고, 때로는 정부와 부딪히면서 지역을 바꿔나갔다.
■곳곳에서 뜨거운 요구…'지역의 시간' 이 왔다
한국에서도 '중앙집권형' 보건의료정책은 이미 한계를 맞았다. 강원자치도와 각 시·군 입장에서도 일본 지방정부가 모색하는 자치의 방향을 '남의 일' 처럼 바라볼수 없는 이유다.
경상남도 하동군의 경우 지역에서 유일하게 응급실을 갖추고 있던 병원이 2021년 문을 닫으면서 온 지역이 합심해 '병원 만들기' 프로젝트에 나섰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의뢰해 용역을 진행한 결과 하동군민의 92%가 종합병원 설립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공공의료기관 운영이 민간 운영보다 적절하다는 의견도 84%에 달했다.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정책적 요구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군은 종합병원급 지역의료기관 구축을 군의 역점사업으로 정하고 9월 22일 군청 대회의실에서 연구용역 중간보고와 주민공청회를 개최했다.
하동군보건소 서미옥 보건정책과장은 "민간의료기관이 최근 10년간 서너 차례 휴업과 폐업을 반복하고 회생절차를 거치면서 주민들의 피로감이 커졌다" 며 "의사 인력 등은 여전히 고민스러운 부분이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주민의 요구에 응답하는 병원을 만들 예정"이라며 "현재는 주민들에게 어떤 병원이 필요한지 구상하며 지역 내 다빈도 질환 등을 파악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충청북도 단양군에서는 지난해 지방선거 핵심공약으로 ‘단양군보건의료원 도립화’ 가 등장하면서 주민들의 건강과 의료 문제가 지역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군은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단양군에 충청북도립의료원 설립을 추진했으나 충청북도와 보건복지부 검토 과정에서 보건소를 확장한 보건의료원 형태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 내에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이 한 곳도 없는 반면 주민들의 높은 사망률 등은 이어지고 있어 지역 공공의료 보완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와 관심이 높다.

전라남도 해남군에서는 지난해 병원 한 곳이 폐업한 이후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 부족 등이 심화되자 군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해남군은 올 초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한 민간의료기관 지원 조례' 를 만든 데 이어 자체 공모사업을 시행, 읍내에 위치한 해남종합병원을 소아청소년과 야간진료 운영기관으로 지정했다. 명현관 해남군수는 "소아청소년과 심야 진료 운영 개시로 군민들이 인근 도시로 진료받으러 가는 불편함이 해소되고 야간에 아이가 아파도 걱정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언제든지 안심하고 소아 진료가 가능하도록 앞으로도 의료기관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소아 의료체계 관련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방정부, 조연에서 주연으로
각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요구와 정책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중앙정부의 정책에 '순응'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주민들은 적극적인 지방정부의 역할을 요구한다는 점. 코로나19를 거치며 건강과 보건의료 인프라 불평등에 대한 관심은 높아진 반면 지역간 불평등은 더이상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면서 터져나온 변화다.
강원자치도내에서도 정선군은 2016년 지역의 민간 의료재단이 문을 닫자 2019년 의료 공백 해소가 시급하다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선의료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2020년 정선의료재단 군립병원으로 문을 열었고, 응급실과 입원병동 30병동을 본격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와 사회적 기반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능동적인 지방정부와 동시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의 제도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신애정 정선군보건소장은 "의사 구하기가 너무 힘들고, 일부 진료파트는 수익보다 의사 인건비가 더 비싼 상황" 이라며 "의료원은 거점공공병원으로 지정돼 예산을 지원받지만 군립병원은 관련 조항조차 없어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고 호소했다. 또, "각 지역에서 의료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주민들에게 필요한 의료를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과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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