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며 지역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가 줄자 지역 의료기관이 급격한 폐업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만 강원특별자치도 내에서 86개의 의료기관이 폐업(요양기호 취소)했다. 이처럼 '의료시장 붕괴' 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국가와 지방정부가 여전히 지역 의료를 민간병원에 의존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강원자치도내 18개 시·군에서 1년동안 관외로 유출되는 의료비 금액은 2021년 기준 연간 7,882억 8,728만원에 이른다. 10년 전인 2011년3,605억 9,041만원에 비해서도 4,277억원 가량 늘어난 수치다.

■'의료 시장'이 만드는 사각지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통계'를 기반으로 10년 전인 2012년과 2023년 1분기의 강원특별자치도내 의료기관 수를 비교해 보면 2013년 62곳이었던 병원(종합병원 포함)은 올 1분기 기준 12개 감소한 50곳으로 집계됐다. 의료기관 감소는 특히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중이다. 정선군의 경우 2013년 기준 4곳의 병원이 있었으나 2곳이 남았고, 인제군 전체의 의원은 8곳에서 4곳까지 감소했다.
시·군 내에 병의원이 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주민들이 '원정 진료'를 강요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농어촌지역에 주민들의 일차 건강돌봄을 담당할 공공의료 시스템이 없어 민간 의원이 문을 닫는 경우 주민들은 졸지에 갈 곳을 잃기 때문이다.
인구 5,955명이 거주하는 횡성군 둔내면은 내과도, 가정의학과 의원도 없는 지역이다. 가정의학과 의원 1곳이 지역의 일차의료를 담당해 왔지만 지난해부터 문을 닫았다. 의원이 문을 닫은 뒤부터 3명 중 1명(29.7%)이 65세 이상 고령층인 주민들은 고혈압과 당뇨 진단 한 번을 받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여를 이동하는 원거리 진료를 감행하고 있다. 최진구(63) 둔방 1리장은 "지역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고, 여기저기 아프면 종합적인 진료를 봐야 하는데 이제는 횡성 읍내나 원주까지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버스도 한 번에 가지 않고, 횡성 읍내라고 해도 교통 상황을 고려하면 원주시내로 나가는 것과 비슷하게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여를 가야 한다"며 "특히 차가 없고 운전하기도 불편한 어르신들의 불편이 크다" 고 호소했다.
지역의 의료시장 붕괴가 진행되는 동시에 수도권에서는 각 병원이 오히려 병상 수를 늘리면서 지역 의료 고사에 대한 우려도 심화되고 있다. 이미 2028년 전·후로 수도권의 9개 대학병원이 병상 최소 6,600개를 신설 예고했고, 강원자치도내 의료기관 폐업과 의료진 유출 등이 예상되면서 지역에는 비상이 걸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지역별 병상 공급을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발표, 각 지역에 공급 제한 등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이미 늘어난 수도권 대형병원 병상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 방안은 내놓지 않아 '보여주기식'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남우동 강원대병원장은 "수도권에 대규모 병상이 새로 개업할 경우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지역 거점병원인 강원대병원과 영서지역 병원들의 인력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강원특별자치도내 보건의료 환경을 고려할 때 그 결과로 영동지역과 의료취약지 주민들이 연쇄적으로 피해를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현재 발표된 대책으로는 수도권의 대규모 병상 공급을 실효적으로 제한하고 있지 못하다" 고 비판하고,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는 허가가 됐더라도 국가 병상 수요에 따라 개원을 단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고 말했다. 또,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공립병원 의사인력에 대한 예산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이미 행정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경우 신뢰보호 원칙에 따라 허가를 취소할 수는 없다" 며 "한 번에 대규모 증설이 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증설 요청이 있어도 공급 과잉 상태인 경우 제한할 수 있다" 고 해명했다.
■지역 의료 위기 키우는 취약한 공공의료
위기의 배경에는 한국의 취약한 공공의료가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공공병원 병상 비중이 가장 적은 나라다.

한국의 공공병상 비중은 9.61%로, 프랑스(61%), 독일(40%)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비싸고 불편한 의료 환경으로 잘 알려진 미국(21%) 보다도 낮다. 문제는 공공병원의 비중이 낮고 공공의료에 대한 국가적 투자가 부진한 사이 수도권에서는 민간병원이 빠르게 늘어나고, 민간병원이 투자를 꺼리는 농어촌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지난해 산출한 통계에 따르면 도내 가임기 여성 5명 중 1명(21.4%)은 거주지 근처에 산전진찰을 받을 산부인과조차 없어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고, 33.2%의 주민들은 중증 외상 치료가 필요해도 권역응급의료센터까지 가려면 1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미 병상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수도권에 또다시 병상이 증가하면 지역 간 의료 인프라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의료 체계는 병원이 마치 영업 점포처럼 진료수익을 내야 하는 만큼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서 개원을 해야 경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1년 통계에 따르면 '빅5' 로 불리는 서울시내 5개 대형 병원은 전국 9만8,479개 의료기관 중 0.005%에 불과하지만 전체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액의 8%를 사용한다. 액수로는 7,016억 5,433만 4,490원으로, 강원자치도 모든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급여액 (2,108억 353만 4,800원)의 약 3.4배에 맞먹는 정도다.
■지금 일본을 돌아보는 이유
한국과 유사한 사회적 환경에서 이미 20여년 전 동일한 위기를 겪은 국가가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이다. 한국 실정에서 일본의 고령화 극복 경험과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은 한국보다 앞서 고도경제성장시기를 맞이한 뒤 1980년대 미국과 경제 규모를 견줄 정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이 시기부터 수도인 도쿄로 사람과 물자가 모두 더욱 집중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각 지방에서는 인프라 유출과 고령화가 급격해졌고, 이미 1990년 일본의 고령화율은 한국의 2015년 수준인 12.1%에 달했다. 이후 '버블경제' 의 거품이 꺼지고 2000년대 초반까지 장기간의 경기 침체 시기인 '잃어버린 10년'이 도래하자 각 지역에서는 인구 유출로 인한 악영향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의료와 돌봄 수요가 늘어났으나 도쿄와 각 지역 사이의 의료 인프라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면서 지역 주민들이 의료 인프라 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거나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고령화 진행 이후 2023년 현재까지 한국의 각 지역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현상과 유사한 양상이다. 강원자치도의 자매도시인 돗토리현의 경우 고도성장기 이후에도 농림·수산업 등 1차산업 중심 구조를 유지해 왔고, 농·어촌지역을 중심으로 의료와 돌봄 인프라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는 의사 수가 증가했으나 수도인 도쿄와 각 지방 사이의 격차는 오히려 심화되고, 낙도와 벽지에서는 의사 수가 오히려 감소했다. 돗토리현의 경우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9개 시정촌 중 11개에서 의사 수가 그대로거나 심지어는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으로 파악됐다. 현이 2011년 ‘돗토리현벽지보건의료계획’ 을 통해 공표한 결과다.
■'지방소멸' 막는 지자체의 '책임성'
이처럼 급격한 '지방 소멸' 현상이 시작된 이후 2023년 현재까지 일본의 각 지역이 앞장서 만들어내고 있는 변화와 과제는 주목할 만 하다. 한국이 최근 '지역인재' 전형과 국립공공의과대학 확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에서 일할 수 있는 의사 양성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공공병상 비율이 낮은 나라이지만 공공병원이 강력한 역할을 수행하는 지역 중심적 의료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실제 일본 후생노동성이 공표한 2021년 기준 의료시설조사 자료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 위치한 300병상 이상 1,431곳 중 21.17%(303곳)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공공병원이다. 이는 전국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 264곳 중 단 8.3%(22곳)만이 지자체 설립 공공병원에 해당하는 한국의 현실과 대비된다. 한국 자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2년 집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300병상'은 병원이 보유한 입원실의 개수로,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병원의 크기와 기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양국의 의료 환경과 병원 운영 방식을 고려하면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이 전반적인 필수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지역에서의 거점 병원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의 이와 같은 '공공의료 중심' 체계는 일본이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국가 체계를 수립해서부터 제 2차세계대전 패전 이후까지 겪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정착했다. 경제공황과 패전 등 막대한 규모의 인프라 붕괴를 겪은 뒤 민간 자본을 끌어들일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공공이 나서 늘어나는 의료 필요를 충당했고, 경제성장 이후 도쿄로 물자와 인력이 집중되는 상황에서도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치'를 이뤄냈다. 수도권 집중과 지역 의료시장 붕괴가 동시에 나타나는 2023년 한국이 일본 각 지역의 사례를 분석하며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건강돌봄 체계를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김영수(예방의학 전문의) 창원경상대병원 공공보건사업실장은 "일본은 지방의료원들이 수련병원으로 탄탄하게 운영되면서, 지역에 필요한 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사를 배출하고 있다" 고 말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료원을 도우면서, 이들 의사들이 적소에 배치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의료취약지 응급실에 응급의료 교육을 받지 못한 공중보건의들이 배치돼 소극적인 진료를 하고 있으며, 임상경험이 거의 없는 의사들이 보건지소에서 지역주민을 진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경우 고령층이 다수이며, 이들이 복합적인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 중증도가 높기 때문에 다양한 질환을 두루두루 볼 수 있는 실력있는 의사가 도시보다 더 많이 필요하다"며, "과도하게 세분화된 한국의 대학병원 전문의 수련은 이런 환자들을 보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지역의 의료정책과 관련해서는 "더 가까운 곳에서 나은 의료를 이용하고 싶은 주민들의 요구가 있는 만큼 중앙정부만 바라보기보다는 지역현실에 필요한 건강정책을 만들기 위해 지방정부가 과감하게 투자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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