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추억거리, ‘공중전화’. 어렵던 그때 그 시절, 서민들에게 없어선 안 될 필수품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던 것이다.
손전화 사용이 일상이 된 지금이야 “그땐 그랬지~”의 이야깃거리로 가끔 소환될 뿐이지만, 집전화가 대중화 되기 전인 1980년대 이전에는 목소리로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 바로 공중전화였다. 그 당시에는 편지나 엽서로 소식을 전하던 것이 일반적이었고, 신속성으로 따지면 전보가 있었지만 여전히 문자를 통해 일방적으로 소식을 전하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공중전화가 지닌 직접성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전화는 서민들에게는 언제나 ‘애용’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애증’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넘쳐나는 이용자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 그 첫번째 이유다. 그래서 도심 외곽에 살던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웃돈을 안기고 전화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웃픈’ 상황들이 꽤나 자주 벌어졌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중전화는 주로 도심을 중심으로 설치됐기 때문에 공중전화 ‘기근현상’이라는 말까지 언론을 통해 등장하기도 했다. 1974년의 통계를 보면 전국에는 약 2만대의 공중전화가 설치됐고, 그 가운데 절반 정도인 1만여대가 서울에 집중돼 있었다고 하니 말 그대로 귀한 몸 그 자체였다. 서울의 사정이 이러했으니 강원도를 비롯한 ‘지방’은 오죽했겠는가. 그나마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가까운 곳에 공중전화가 설치된 사람들은 긴 줄 서기를 감수하면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이용했다. 말하자면 공중전화 보유 마을의 특권 같은 것이었다. 반면에 어머니 목소리 한번 듣고 싶어 전화 한 통 쓸라치면 20~30분은 족히 걸어야 했던 사람들은 눈물을 머금고 돈을 더 내고서라도 일반 전화를 사용해야 했다. 그마저도 없으면 하릴없이 걷거나, 날 잡고 몰아서 안부 묻기 릴레이를 해야만 했다.
이처럼 공중전화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다 보니 이용요금은 항상 민감한 이슈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국회가 나서 정부의 공중전화 요금 인상안을 백지화 시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때는 1973년. 국회 예결위가 다음 해 예산안에 대한 계수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체신부가 새해 1월1일부터 공중전화 요금을 5원에서 10원으로 2배 인상시키겠다고 올린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이로 인한 세수 감소는 신규전화 가설료 인상으로 충당하자는 대안까지 제시했다. 공중전화의 주 이용층인 서민들에게 부담을 주기보다는 일반 전화를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사는 사람, 혹은 사업장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서민들에게 심리적으로 물가가 2배 뛰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고 백지화 이유를 밝힌 국회 예결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당시 공중전화 요금 인상이 얼마나 민감한 사안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공중전화 사용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만도 함께 늘었다. 동전을 그냥 삼켜버리거나 통화 중에 전화가 끊기기도 하고, 고장도 상당히 잦았다. 이 가운데 동전만 먹고 통화는 거부해 버리는 공중전화의 ‘배임’이 가장 큰 문제였다. 택일(?)을 한 날 공중전화에 도착해 순서를 기다린 다음 전화를 거는 순간..., 동전이 그대로 요금통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열받고 짜증나겠는가. 실제 1970년대에는 공중전화가 동전을 ‘꿀꺽’해 버리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급기야 서울 청량리우체 국 앞에 설치된 공중전화에서 10원 동전을 빼앗긴 한 사람이 국가를 상대로 그 돈을 반환해 달라는 민사소송을 내는 일이 1978년에 실제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인지대와 송달료 등 소송 비용이 722원이었다고 하니 그 사람이 당시에 느끼고 있었을 열받음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도 꽤나 오랫동안 통화하고 남은 동전을 거슬러 받을 수 없어, 뒤에 오는 사람에게 양보한다는 의미에서 수화기를 공중전화 위에 올려 놓고 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곤 했다.
이렇듯 공중전화에는 민초들의 애환이 켜켜이 스며들고 녹아 있다. 물론 삶과 밀접했지만 낭만도 있었다. 015B의 ‘텅빈 거리에서’ 가사처럼 공중전화에 차마 동전을 넣지 못하고 대답 없는 너를 향해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랑과 이별의 메신저였고, 공중전화를 감싼 부스는 비밀스러운 나만의 공간으로 비를 긋는 낭만의 장소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제는 공중전화 없이 책이 주인이 돼 작은 도서관으로 쓰이거나 ATM 기기가 들어앉아 있기도 하다. 영화 ‘영웅본색2’에서 주윤발 품에 안겨 절명 직전에 놓인 장국영이 출산한 아내에게 갓 태어난 딸의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에 등장하는 추억 속의 그 공중전화는 이제 어디에 있을까. 그때를 아십니까.
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