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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뉴욕]못다한 이야기 20(完).쇼핑 천국 뉴욕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된 공룡 스토어, 메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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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랜드 메이시 1858년 작은 상점 개장으로 시작
1902년 현 위치…120년 이상 세계적인 백화점 위상 지켜

20(完). 쇼핑 천국 뉴욕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된 공룡 스토어, 메이시스

뉴욕에는 정말 많은 스토어들이 있고 큰 백화점들도 즐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오래된 백화점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답은 맨해튼 한복판 헤럴드 스퀘어(Herald Square)에 위치한 메이시스(Macy’s)일 것이다. 뉴욕을 처음 방문해서 지인에게 줄 선물을 사거나, 직접 쓸 생활용품을 사거나 어느 때나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백화점. 그냥 뉴욕에 있는 백화점은 어떤지 구경하고 싶을 때 가장 둘러보기 좋은 백화점이 메이시스다. 그 크기가 하도 넓어 하루 새 다 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상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한번 다녀갔던 매장을 다시 찾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넓고 복잡하다. 한쪽에서 초현대식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내리는가 하면 다른 한쪽 구석엔 100년은 되었을 법한 옛날식 에스컬레이터가 여전히 운행 중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복합 매장이며, 가격 스펙트럼도 넓어 고가 상류층부터 중저가 서민층까지 모든 소비자층을 아우르는 초대형 스토어이다.

처음 건조물 상점으로 오픈했던 1858년 당시의 메이시스(자료: The Historical Atlas of New York City)

뉴욕에서 메이시스가 갖는 상징성이 얼마나 큰지는 대표 축제인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메이시스가 주관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는 각 주(州)별로 특색있게 진행되는데 뉴욕은 메이시스가 주관하는 퍼레이드(Macy’s Thanksgiving Day Parade)를 1924부터 계속해 오고 있다. 추수감사절 날 각종 유명 캐릭터 대형 벌룬(balloon)을 띄워 6번 애버뉴를 시가행진하고 이를 구름 같은 인파들이 몰려 구경하는데, 마지막에는 모두 메이시스 앞 광장에 모여 브로드웨이 쇼 하이라이트를 생중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백화점에선 볼 수 없는, 메이시스만이 갖는 또 다른 특출한 점은 이 백화점의 광범위한 고객 수용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메이시스의 상품가격대는 천차만별이다. 대부분 백화점이 특정 고객층을 겨냥하여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것과는 달리 메이시스는 거의 모든 고객층을 대상으로 거의 무차별한 마케팅을 펼친다. 거의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많은 상품을 판매한다. 백화점이라는 단어 뜻 그대로가 가장 잘 적용되는 백화점이라 할만하다. 아주 오래 전에 백화점이란 개념을 거의 처음 도입했고 전 세계 무수한 백화점들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쇼핑업계에서 메이시스가 갖는 의미는 독보적이다. 그럼 여기서 메이시스가 어떻게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는지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메이시스_백화점 앞 거리

뉴욕에서 가장 먼저 쇼핑가가 형성된 지역은 지금의 다운타운 지역 시청부터 소호(SOHO)가 시작되는 휴스턴 스트리트(Houston Street)까지 이어진 남쪽 브로드웨이 인근 지역이었다. 주로 건조물을 진열해 놓고 팔았던 스튜어트 건조물 상점(A.T. Stewart dry goods store)이 그 시초였는데 19세기 중반까지 상당 기간 뉴욕 대표 상점으로 자리매김한다. 마침내 메이시스의 창립자 롤랜드 메이시(Rowland H. Macy)가 1858년 작고 아담한 건조물 상점을 개장하는데, 그는 외곽에 있는 많은 소형 소매상들이 다운타운 상가에 군집된 대형 소매상들과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점에 착안, 소형 소매상들의 물건을 한데 모아 저렴하게 파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로 사업을 키운다. 이런 사업방식이 거듭 성공하면서 판매 물품도 다양해지는데, 드디어 1870년에는 건조물뿐 아니라 가구, 모피, 의류, 서적, 가정용품, 주방기기 등 각종 상품을 모아 진열해 놓고 파는 백화점식 판매를 시작한다. 또한 메이시는 1863년 그 당시까지 개념이 없던 ‘정리처분 세일(clearance sale)’을 최초로 도입하는가 하면 1874년에는 마네킹 인형과 장난감 등을 이용해 계절별로 쇼윈도우를 달리 전시하는 ‘시즈널 디스플레이’를 시작한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고 참신한 마케팅 기법이었다. 1875년에는 그동안 메이시가 주로 활용했던 ‘싼값 판매’ 이미지를 청산하고 소비자에게 필요한 상품을 정상가로 당당하게 판매한다는 ‘정상 판매’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쓰며 업계의 리더로 환골탈태한다.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벌룬 축제

지금의 백화점(department store) 개념이 실제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건 롤랜드 메이시가 세상을 뜬 1877년이 지나고도 한참 후인 1890년대였다. 백화점이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 친숙하게 자리 잡으면서 뉴욕 최대 백화점인 메이시스의 위상도 따라서 높아진다. 19세기말 20세기초 그동안 다운타운에만 머물렀던 뉴욕의 중심 무대가 점차 북상하게 되면서 쇼핑업계도 다운타운에 치우친 위치로는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는데, 당시 패션, 호텔, 레스토랑, 극장, 클럽 등 거의 모든 상권이 미드타운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메이시스도 자리를 옮길 필요성을 느낀다. 마침내 1902년 지금 위치인 브로드웨이와 34번 스트리트가 교차하는 헤럴드 스퀘어로 자리를 옮기는데, 지금 그 자리에서 무려 120년 이상을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의 위상을 지키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메이시스_100년전 에스컬레이터 운행

앞서 말한 것처럼 뉴욕에는 메이시스 말고도 많은 백화점들이 있다. 중저가 위주의 대중적인 백화점 노드스톰(Nordstorm), 중고가 위주의 깔끔한 디스플레이로 유명한 블루밍 데일즈(Bloomingdale’s), 고가이면서 가장 뉴욕스럽다는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 여성 액세서리 특화 백화점 헨리 벤델(Henry Bendel), 록펠러 센터 앞 크리스마스 전시로 유명한 색스 피프스(Saks Fifth), 가격에 0이 하나 더 붙는다는 초고가 백화점 버그도르프 굿맨(Bergdorf Goodman), 도심속 아웃렛 센추리21(Century21 Department Store) 등 각각 타겟 소비층이나 주류 상품, 주류 가격대 등을 차별화하여 저마다의 특색을 뽐내는 개성에 찬 백화점들이 공존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백화점 가운데서도 메이시스가 차지하는 미국내 위상은 남다르다. 역사도 역사려니와 그 압도적인 규모 때문에 뉴욕뿐 아니라 미국을 통틀어 대중성과 상징성이 가장 뛰어난 백화점으로 평가된다. 디지털 시대에 온라인 쇼핑이 대세를 이루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오프라인 규모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막상 뉴욕 한복판 메이시스를 돌아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 정도면 단순한 백화점이라기보단 뉴욕을 대표하는 하나의 랜드마크라고 해야 한다. 아이쇼핑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치고, 다리가 아플 만큼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이 공룡같은 거대 스토어를 몇 번 드나들다 보면 미국 자본주의의 현장이 나도 모르게 체험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총 20회에 걸쳐 메트로폴리탄 뉴욕의 대표적인 핫플레이스들을 골라 그 어제와 오늘을 다루어 보았다. 3년간 뉴욕에 살면서 보고 겪은 핫플들의 여러 면모를 있는 그대로의 팩트와 개인적인 느낌을 섞어 뉴욕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풍부한 정보와 체험담을 전달해보려 애썼다. 누구나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 괜히 마음이 편해지고, 누군가에게 자꾸 말하고 싶고,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그런 대상이 한두개 쯤은 있을 것이다. 내겐 그런 대상이 뉴욕이고, 그곳 뉴욕에서 살았던 3년의 소중한 기억들이다. 40대를 보내고 50대로 접어들 무렵 완전한 이방인이면서도 온전히 뉴요커처럼 살았던 그 3년이 내겐 너무나 흥미롭고 다양하며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했던 인생의 한 획이었다. 그 나이에 그처럼 자유롭고도 풍요로운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다.

조금은 지루하고 느슨해질 무렵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그 시간들이 분명히 내 인생을 조금은 더, 아니 많이 풍요롭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좋은 기억 때문에 더욱 글로 남겨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핫플레이스’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이미 너무나 익숙한 공간들이지만 그곳에 얽힌 옛이야기와 오늘날의 변화된 모습들을 접하면서 ‘이곳이 예전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게 된 거였구나“하고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면 글을 쓴 보람이 매우 클 것 같다. 직접 그곳을 가보았든 가보지 않았든 상관없이 어떤 대상에 대해 새로움과 흥미를 느낀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조각으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글에 소중한 지면과 섹션을 할애해 주신 강원일보 박진오 사장님, 소소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읽고 사랑해주신 많은 독자 여러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전하며 연재를 마친다.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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