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용 한국은행 강원본부장
뉴욕 맨해튼의 최고 중심, 정중앙은 어디일까? 타운으로 치면 미드타운, 동서 애버뉴로 치면 5번~6번 애버뉴, 남북 스트리트로 치면 센트럴파크 남단 50번대 스트리트쯤 될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가장 중심에 있는 랜드마크는 바로 록펠러 센터이다. 48번부터 51번 스트리트, 5번부터 6번 애버뉴가 교차하는 중심에 21개 건물이 밀집해 있는 복합상업단지로 맨해튼의 딱 중심에 해당한다. 뉴욕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겐 록펠러 센터가 그저 록펠러라는 전설적인 부자가 세워서 기증한 건물로, 매년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열리는 이벤트의 명소, 겨울철 스케이트를 즐기는 아이스링크가 있는 곳, 맨해튼 중심의 전망대(Top of the Rock)가 있는 곳 정도로 인식된다. 하지만, 뉴욕에 사는 사람들에겐 조금 다르다. 이들에게 록펠러 센터는 맨해튼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지나칠 수밖에 없는 중심. 뉴욕시민의 나눔과 공유의 숨결이 느껴지는 공간. 세인트 패트릭 성당 맞은 편 만남의 장소, NBC 미디어 센터가 있는 곳 등 생활공간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우리로 말하면 명동성당 부근에 있는 유명 백화점들에 지상파방송이 들어가 있는 복합 상업센터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록펠러 센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거대 상업단지의 역사부터 훑어볼 필요가 있다. 원래 목초지였던 이곳이 최초로 개발된 건 1801년 데이비드 호삭(David Hosack)이라는 뉴욕 의사(뮤지컬 해밀턴의 실제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이 결투로 치명상을 당했을 때 그를 치료했던 의사로 유명)에 의해서였다. 호삭은 이 부지를 식물원으로 개발했다가 1811년 뉴욕주에 매각한다. 뉴욕주는 다시 이 부지를 컬럼비아 대학교에 기증하고, 대학은 이곳에 많은 소건물들을 지어 리스로 운영하다 192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컴퍼니에 매각한다. 당시 뉴욕은 미드타운(브로드웨이와 39번 스트리트 교차지역)에 있던 오래된 오페라 하우스를 헐고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를 짓자는 시민운동이 활발했는데 거부 록펠러(John D. Rockefeller, Jr.)가 이에 앞장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컴퍼니의 최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이 회사도 파산하고 마는데, 록펠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개인재산을 들여서라도 어떻게든 매입부지를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결국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는 당초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록펠러는 이 핵심부지 개발사업을 오히려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규모 일자리 창출사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키운다. 마침내 그는 이곳을 뉴욕시민들을 위한 공간, 기업과 미디어가 결합된 복합상업지구로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대규모 개발사업을 추진하는데, 입주기업으로는 NBC의 모기업인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 등이 참여하였다. 개발사업의 대장정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시작되어 1940년 마무리되었는데, 무려 225,000명의 노동자가 고용되었고 록펠러의 사비 1억 3,500만달러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개발전 난립하였던 228개 군소 빌딩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22에이커(대략 26,400평) 부지에 지금의 21개 현대식 건물이 웅장하게 들어선 것이다.


5번가 세인트 패트릭 성당 앞에서 록펠러 센터로 들어서려면 6번가 쪽으로 저만치 보이는 거대한 메인 빌딩(GE빌딩) 앞으로 길고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한다. 이 통로의 공식 이름은 산책로란 의미의 ‘Promenade’이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채널가든(‘Channel Gardens’)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채널은 영국과 프랑스를 가로지르는 잉글랜드 해협(English Channel)을 비유한 말로, Promenade 양 옆의 두 건물이 프랑스식 La Maison Française와 영국식 British Empire Building인 점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채널 가든을 쭉 걸어가면 끝에 아이스링크가 있는 로어 플라자(Lower Plaza)가 보인다. 물론 겨울철에 그렇다는 이야기고 여름철엔 야외 레스토랑이나 카페로 쓰인다. 아이스링크 한 가운데는 금빛 조각상 하나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바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Paul Manship 1934) 조각상이다. 어찌나 금빛인지 이게 통째로 순금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링크 위로는 유엔 만국기가 펄럭이는데, 뉴욕이 유엔 빌딩이 있는 국제평화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메이킹하는 효과가 있다.
GE 빌딩 꼭대기 70층에는 유명한 전망대 ‘탑 오브 더 락(Top of the Rock)’이 있다. 뉴욕의 랜드마크 전망대로는 그 유명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와 최근 지어진 원월드 오브저베이션(One World Obesrvation)이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탑 오브 더 락을 최고로 친다.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으나 맨해튼의 정중앙에 위치하여 사방을 가장 잘 볼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실제로 탑 오브 더 락에서 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매우 현실적이고 야경이 특히나 아름다워서 그 이유를 실감케 한다. 이 빌딩에는 미국의 대표 지상파 방송의 하나인 NBC가 입주하여 대부분의 인기 프로를 현재도 제작 송출하고 있는데, 지미 펠론의 투나잇쇼, 세스 마이어스의 레이트 나잇, SNL(Saturday Night Live) 등 토크쇼와 보도전문채널 MSNBC가 모두 여기서 제작 방영된다. GE빌딩 옆 6번 애버뉴쪽에 위치한 대형 엔터테인먼트 홀 ‘라디오 시티 뮤직 홀(Radio City Music Hall)’도 록펠러 센터의 한 건물이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공연하는 록키츠(Rockets) 공연으로 유명한데, 보통 12월 한달 내내 공연이 이어지므로 이 무렵 뉴욕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번 관람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시점은 정확히 록펠러센터의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열리는 그 순간이다. 센터 앞 채널가든은 물론 부근 세인트 패트릭 성당과 삭스피프스애버뉴(Saks Fifth Avenue) 백화점 앞까지 가득 메운 인파가 크리스마스 점등에 환호하는 바로 그 순간이 크리스마스 시즌 긴 홀리데이의 시작이다. 세인트 패트릭 성당의 거룩한 영적 이미지와 록펠러 센터의 강렬한 자본주의적 이미지가 서로 대비되며 마치 성속(聖俗)이 한데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개인적으로 머문 3년 동안 연말만 되면 이곳을 지나면서 느꼈던 들뜨면서도 여유로운, 행복한 것 같은 기분이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1989년에 일본 미쓰비시가 록펠러센터의 지분을 51% 매입하며 실질적 소유주로 떠올랐을 때 온 미국이 마치 일본에 점령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당시 세계 2위 자본국 일본을 경계하는 미국내 언론이 워낙 민감했던 탓도 있지만, 록펠러 센터가 미국의 자본주의를 얼마나 집약적으로 보유주는 상징적 존재인지를 일깨워주는 일대 해프닝이었다. 지금은 기업간 M&A가 워낙 일상적이어서 아무런 느낌도 없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거대 M&A를 바라보는 시각에 정치적, 심지어는 민족적 색채까지 낀 적이 많았다. 당시 어렸던 필자도 어떻게 일본이 뉴욕의 심장과 같은 빌딩을 소유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록펠러 센터가 미국인들에게 주는 상징성은 아주 크다. 더구나 이 거대한 맨해튼 정중앙의 상업단지가 단 한 사람 록펠러라는 개인의 기부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창조되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독특하기까지 하다. 이들의 기부문화가 아주 오래 전부터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만큼 굴지의 재벌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기부의 정신과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개인과 가문은 흐지부지되더라도 그 선한 의지의 유산만큼은 오래도록 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