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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 ‘DMZ 평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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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인생을 닮았다.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는 모든 순간이 현재이고 그 발자국들의 끝에 미래가 열린다.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가타리에 의하면 국가 권력의 본질은 “공간에 홈을 파는 것”, 곧 길을 관리하는 일이다. 그래서 국가는 부단히 철길을 내고 도로를 닦는다. ▼속도의 사상가 비릴리오는 오늘날은 더 빠른 속도가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 곧 ‘질주정(疾走政)’ 시대라고 했다. 그것의 대표적 총아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다. 고속성장을 추구해 왔던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의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전형이었다. 세계로 열린 바닷길, 하늘길이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러나 그 이면의 폐해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는 일종의 컨베이어 벨트가 돼 국토를 공장같이 만들어 버린다. 여행을 마치 작업 공정처럼 다룬다. ▼강원도가 이에 대한 ‘반기’로 2009년 ‘산소길’을 창안했다. 백두대간길, 동해안 낭만가도, 평창 오대산 선재길은 모두 산소길이다. 이 산소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사이 공간과 사람 공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당연한 저항(?)이다. ▼그동안 시범적으로 개방돼 왔던 ‘DMZ 평화의 길’ 11개 노선이 지난 13일 양구를 시작으로 전면 개방된다. DMZ 평화의 길 테마노선은 문체부·행안부·국방부·통일부·환경부 등 5개 부처와 접경지역 10개 시·군이 합동으로 세계 유일의 한국형 생태·평화자원인 ‘DMZ 접경지역’을 소재로 세계적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2019년 4월 고성을 시작으로 총 526㎞ 구간의 도보 여행길로 조성했다. 올해는 양구와 인제, 철원, 화천, 고성 등 강원도 내 5개 군과 인천 강화, 경기 김포·고양·파주·연천 등 10개 시·군 11개 테마노선이 개방된다. ‘DMZ 평화의 길’을 걸으며 이해를 따지기보다는 배려를 생각하고, 각자의 길을 생각하기보다는 우리의 길을 생각하고 헤어짐을 생각하기보다는 만남을 먼저 떠올렸으면 좋겠다.

권혁순논설주간·hsgw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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