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줄세우는 수직적 구조·작품 수 늘리는 양적 확대 지양
관객 주체 프로그램도 눈길… ‘나는보리' 등 강원영화 돋보여
아시아 최대 규모 영화축제인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5일까지 부산에서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국제영화제인 BIFF는 쟁쟁한 국제영화제 사이에서 아시아 신인 감독을 발굴하겠다는 틈새 시장을 노려 출범했다. 이후 영상문화의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로 지역에서 위상을 키워 왔다.
지난 9일부터 사흘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현장연수를 통해 BIFF 현장을 들여다보고, 강원도 영화제와의 연계성을 살펴봤다. 우선 전환의 시기를 맞은 점이 눈에 들어왔다. 박도신 프로그래머는 “다이빙벨 사태 등으로 중장기 발전안을 마련할 기회를 놓쳤다.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계획이 곧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고 했다.
■탈중심성과 정체성=영화제는 탈중심성과 중심성이 공존하는 영화제를 지향한다. 중심성이 가진 권위주의를 어느 정도 내려놓겠다는 의미다. 9일 영화의 전당에서 만난 허문영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지금 정체기다. 중대한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정체가 길어질 것”이라며 “훌륭한 영화를 모아 일종의 줄을 세우는 수직적 구조를 가진 칸 영화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고 했다. 그는 영화 편수, 영화제 일수를 늘리는 양적 확대가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했다. 중심부를 키우는 확대가 아닌 뿌리를 키우는 ‘확산'을 고민한다.
새롭게 도약하려는 영화제가 가진 고민들은 강원지역 영화제, 축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 위원장은 “강원도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무수히 많은 영화제가 있지만 BIFF를 모델로 삼아서는 안된다”며 “정체성을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제들은 ‘왜'라는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영화제는 아무리 많아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프로그램=가장 오래됐거나 권위 있는 영화제라고 해서 모방할 필요는 없다. 도내 영화제들 역시 현재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 된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제의 고민이 드러난 부분들을 살펴볼 필요는 있었다. 우선 올해 영화제는 100% 오프라인 상영을 고집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사람이 모여 영화를 향유하고 공감하는 영화제의 가치에 초점을 뒀기 때문이다. 사회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영화제는 올해 ‘온스크린' 섹션을 신설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의 플랫폼에서 사용한 시리즈물을 영화제 정식 상영작으로 초청했다. 영화와 비영화, 영화와 드라마 경계가 무너지는 현실이 반영됐다. 또 작품 상영 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배우에 집중해 이야기를 나누는 ‘액터스 하우스'도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도 관객·영화인·주민이 주체가 돼 누구나 영화제를 만드는 ‘커뮤니티비프' 등도 이색적이었다.
■눈에 띄는 강원영화=부산에서도 강원도 영화는 돋보였다. 춘천에서 촬영된 영화 ‘싱크홀' ‘승리호', 원주·홍천 등에서 촬영된 영화 ‘방법:재차의'는 야외 무대인사로 현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성훈(강릉) 감독은 ‘킹덤'으로 13일 토크행사를 갖고, 배우 전여빈(강릉) 주연의 영화 ‘낙원의 밤', 홍지영 강원영상위원장의 영화 ‘새해전야'도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서 소개됐다. ‘둔내면 임곡리'를 제목으로 한 영화가 한국 단편경쟁에서 상영되고 있고, 올해 야심차게 신설한 ‘동네방네 비프'에서는 강릉을 배경으로 촬영된 김진유 감독의 ‘나는보리'가 조명됐다.
부산=이현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