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서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목숨 걸고 지켜낸 승리 기념하는 '전승지'
국내에 유일한 북한 건축물인 '노동당사'
반공인사 고문 학살·양민 수탈의 현장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봉안된 도피안사
일몰 일품 학저수지·新랜드마크 은하수교
# 백마고지 전적지=1952년 10월 철원 백마고지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지다.
백마고지는 해발 395m의 고지로 중부전선의 심장부로 불린 철원과 김화, 평강을 잇는 '철의 삼각지대'의 하나인 철원평야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다. 국군 9사단과 중공군이 이곳을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엄청난 양의 포탄 등으로 산등성이가 하얗게 벗겨져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하얀 말이 쓰러져 누워 있는 듯한 형상을 해 백마고지로 불리게 됐다.
백마고지 전투는 6·25전쟁을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힌다. 중공군은 백마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4만5,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했으나 국군 9사단 등이 목숨을 걸고 저지해 끝내 지켜냈다. 당시 10월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이어진 전투에서 24차례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었고 이 과정에서 1만여명의 중공군이 목숨을 잃었다. 백마고지 전적지에는 위령탑과 기념관이 자리해 그날의 자랑스러운 승리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 학저수지=철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명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동송읍 오덕리에 위치한다. 예부터 학이 많이 산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철원지역 8개 저수지 중 축조 연대가 가장 오래됐다.
학저수지 축조 전에는 대부분이 전답이었고 그 한가운데로 개천이 흘러 오덕리와 장흥리 일원에 농업용수를 공급했다. 이후 대교천과 합류되는 지점에 용수기능을 보강하기 위해 보를 설치했고 세차례의 개·보수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평균 수심은 1.5~2m로 다양한 수상식물과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철새들의 쉼터로도 이용되는 등 빼어난 생태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학저수지를 둘러싼 3㎞ 길이의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푸르고 붉은 여명과 일몰은 철원9경에 속할 만큼 아름답다.
# 도피안사=동송시내에서 노동당사로 향하는 이들이라면 놓칠 수 없는 철원의 대표 역사·문화유적이 있다. 동송읍 관우리에 자리한 작지만 큰 사찰 도피안사다.
도피안사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철불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버티고 있다. 도피안사는 865년 도선국사가 1,000여명의 향도와 함께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함께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봉안된다.
유점사본말사지에 수록돼 있는 사적기에 따르면 도선국사가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조성해 철원의 안양사라는 사찰에 봉안하려 했으나, 운반 도중 불상이 없어져 이를 찾으니 현재의 도피안사 자리에 버티고 있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많은 전각이 소실됐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삼층석탑은 화를 면했고 1959년에 법당이 중건돼 오늘에 이르는 사연 많은 사찰이다.
# 은하수교=철원군이 지역의 새로운 관광 랜드마크로 조성한 국내 유일의 비대칭 현수교다.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상사리를 연결하는 총 길이 180m, 폭 3m 규모다. 주탑 높이는 54m로 철원의 상징인 두루미를 형상화해 만들어졌다. 또 은하수교 바닥은 스틸그레이팅이고 다리 중심부의 100m 구간은 투명 강화유리로 제작돼 한탄강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주상절리이면서 철원9경 중 하나인 송대소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다. 군은 은하수교를 많은 국내외 관광객에게 알리기 위해 지난 추석 연휴에 임시 개통했다. 5일간의 명절 연휴 기간에만 2만여명의 관광객이 은하수교를 찾아 한탄강 절경을 감상했다. 은하수교를 건너 상사리 방면의 전망대에 오르면 장흥리 들녘과 태봉대교, 금학산과 동송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 노동당사=남북으로 분단된 우리의 현실을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북한의 조선노동당이 철원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세운 우리나라의 유일한 북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6·25전쟁 직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돼 반공인사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학살한 비극의 장소다. 이곳에서 북한의 대남공작이 이뤄졌고 양민 수탈이 자행되기도 했다.
노동당사 외벽에는 6·25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 동족 간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2001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보호 중이다.
철원=김대호기자 mantough@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