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냐, 에티오피아, 과테말라는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커피는 아프리카와 중남미가 주산지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강원도에서 커피 생산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하다는 생각과 함께 호기심이 발동했다. '강원도 커피'를 만들고 있는 주인공은 강원희 강원대 원예학과 교수다. 강 교수는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로 알려진 블랙 아이보리 커피(일명 코끼리똥 커피)의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해 유명세를 탔다. 블랙 아이보리 커피는 국내 생산에 한계가 있어 지금은 '스페셜티 커피' 생산을 위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는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얻으면 인정되는 프리미엄 커피다. 국내 커피 생산 연구의 선구자인 강원희 교수는 연구실과 춘천시 서면 월송리 강원대 커피 연구 농장을 오가며 스페셜티 커피 대량 생산을 위한 실증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농장을 찾아 강원희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커피와 강원도에 대한 그의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국내서 잘 자랄까'서 연구 첫발
겨울에 얼지만 않으면 문제없어
강원 농업 선도 작목 성장 기대
고품질 스페셜티 커피로 승부수
6차 산업 청사진까지도 마련
해양심층수 이용한 생산법 찾아
이미 미국·일본 특허까지 받아
관련 학과 개설·후학 양성 박차
■'커피 박사'로 유명합니다. 커피 연구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2015년 식물을 연구하는 원예학과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기 위한 재료를 구상하다 커피나무를 떠올리게 됐지요.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커피나무가 잘 자랄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여러 연구논문을 찾아봤더니 겨울에 얼지만 않으면 국내에서도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어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 고품질 커피만 생산할 수 있다면 커피를 강원도의 새로운 브랜드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본격적으로 연구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커피 대량 생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데요. 강원도에서의 커피나무 재배 조건이 궁금합니다=“결론적으로 강원도는 커피나무 재배의 적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추, 무, 감자, 토마토만 봐도 강원도 고랭지에서 생산되면 품질이 더 뛰어나잖아요. 무더운 여름철에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기운이 빠지듯이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면 에너지가 열매로 가 잘 보존되고 품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고 커피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고성의 해양심층수를 활용하고 이산화탄소를 공급하면 생산량도 늘어나고 맛, 향, 색깔, 저장능력 등 품질이 크게 높아집니다. 그러면 외국의 스페셜티 커피와 비교해도 경쟁력을 지닐 수 있고 충분히 겨뤄볼 만합니다.”
■강원도산 커피의 미래를 아주 긍정적으로 전망하시는데요. 문제는 대중화 아닐까요=“그렇죠. 겨울에 얼지만 않으면 재배도 쉽고 병해충에도 강합니다. 재배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되고 고품질의 프리미엄 스페셜티를 생산하면 농업소득 증대를 위한 가능성도 높습니다.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의 의견과 달리 강원도산 커피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차원에서 실증 연구를 이어 가고 있고 이미 검증도 되고 있습니다. 학교에 소규모로 심어놓은 커피나무로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커피 생산 방법을 연구했고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특허를 받았습니다. 원산지에서는 1년에 1∼2번 수확하는데 국내에서는 잘만 조절하면 2개월에 한 번씩 열매를 익게 만들 수 있어요. 농민들에게 소득이 된다는 확신만 주면 수확, 가공, 체험을 연계한 6차 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합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브랜드화와 6차 산업화의 청사진까지 마련해 놓으신 걸로 보입니다=“고랭지 채소와 같이 강원도 커피의 브랜드화는 농민과 지자체의 관심만 어우러진다면 어렵지 않게 춘천을 국내 커피 주산지이자 커피 산업의 메카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일자리와 소득 창출로 이어지겠죠. 아직 국내에서는 커피 생산이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케냐에서 진행되는 코이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고성 해양심층수 미네랄을 이용한 커피 생산을 지원해 그곳 커피 생산 농가의 소득 증대를 지원한다는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커피 재배 방법의 역수출인 셈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커피를 수입해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습니다.”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고추와 고추장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셨는데 커피에도 접목시켰습니다=“아무리 좋은 약도 많이 먹으면 독이 되듯이 해양심층수도 무작정 작물에 공급하면 작물이 모두 죽게 됩니다. 독을 희석하면 약이 될 수 있는데 식물에 심층수의 NaCl(염화나트륨) 성분이 적절하게 공급되면 식물은 자체적으로 좋은 성분을 만들어 내부에 쌓아놓기 때문에 품질이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품질 농산물이 바닷가에서 많이 생산되는 것도 비슷한 이치죠. 포항 시금치, 해남 월동배추, 강화 순무, 무안 양파가 그 예입니다. 2004년부터 해양심층수 연구를 하면서 고추와 고추장, 파프리카 등에 연결시키기도 했는데 커피에도 접목하면 품질 향상의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고성 해양심층수도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강원도의 자원입니다.”
■식물육종학 전문가로서 강원도 미래 농업의 비전을 말씀해 주시죠=“강원도 농업은 시원한 기후와 동해의 바닷물을 지렛대로 활용해 성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농산물도 고품질 브랜드화하지 않으면 힘겨운 상황을 맞게 됩니다. 강원도 기후에 맞고 품질도 뛰어난 찰옥수수를 개발했듯이 우리나라가 고향은 아니지만 커피를 강원도 농업을 이끄는 선도 작목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농산물 재배에 적절한 기후와 해양심층수의 조건이 갖춰져 있습니다. 제가 재배 방법을 확립하고 후학과 농민들이 최고 품질의 커피 생산을 이어 간다면 고품질 커피를 통한 농업의 성장도 가능합니다.”
■커피에 대한 애정과 연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릅니다. 스스로에게 커피는 어떤 의미입니까=“커피나무 잎은 1년 내내 생동감이 넘치고 연구 농장에 와서 보면 늘 기분이 좋아요. 더운 날에는 잎도 찡그리고 있고 시원하면 밝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을 수 있는 고품질 커피를 대량 생산하는 꿈을 향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고 지자체와 농민들에게 가능성을 입증해 보일 것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갔더니 오렌지나무가 가로수더라고요. 겨울철에 얼지 않게 하는 방법만 찾는다면 커피나무를 시가지에서 1년 내내 볼 수 있는 가로수로 심는 것을 시도해 볼 만하다는 구상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커피 생산 연구의 1세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커피 주산지 강원도'의 가능성 도민들께 소개해 주시죠=“고품질 커피 생산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관건입니다. 보통 1㏊당 3,000㎏이 생산되는데 판매되는 커피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당 3,800원에서 70만원까지 다양한데 높은 가격이 보장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고 그래서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스페셜티 커피 생산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세계 어느 커피와 비교해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에 강원도산 커피의 대중화도 자신이 있습니다. 수확에서부터 커피를 생산하는 과정, 바리스타 체험 등 커피를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6차 산업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크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강원대에 커피과학과를 개설하고 커피 생산을 연구하는 후학 양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