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용호선칼럼]`기생충' 쾌거, 지역 영화제 `흥망 가늠자'다

논설위원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국민적 환호· 위안

대다수 영화 종사자 현실은 '로도'를 사는 심정

영상산업 대세, 시늉에 불과한 '적당히'는 폐해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 수상이 세간의 화제다. 도하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4·15 총선 관련 보도도 제쳐버린 빅뉴스였음은 물론이다. 최악을 방불케 하는 경기침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큰 위안이 된 쾌거로 읽힌다. 1990년대말 IMF(국제통화금융) 사태에 짓눌려 있던 우리 국민에게 야구선수 박찬호가 미국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듯 했던 맹활약, 골프선수 박세리가 세계 대회를 연거푸 석권할 당시의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뛰어넘는 정황이다. '한국영화 101년 사상 첫'이라는 어휘도 시원치 않아 '한국문화사의 획기적인 금자탑'이라는 찬사까지 나왔다. 한국영화, 영상산업의 새로운 모멘텀(Momentum)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부인할 수 없다.

우후죽순 격 지역 영화제 난립

'기생충'이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작품상)을 수상했고 보면 어쩌다 받은 상이 결코 아니다. 영화가 지닌 가치,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다시 입증됐다고 해석해야 옳다. 그러나 '기생충'의 영예는 특별한 경우다. 한국영화, 영화산업의 보편적 수위를 대변하는 수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화적 측면의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고 극복해야 할 난관도 산적하다. 영화계 관련 일에 뛰어들었다가 인생이 굴절된 국민이 수두룩하다. 청소년의 희망 직업이 연예인이지만 성공 케이스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게 현실이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측면에서 영화계 종사자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성공한 경우에 비친다.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유명세를 얻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애처로움이 영화 관계자들의 초상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로또 당첨'에 비유하는 현실적 근거다.

대부분의 영화 종사자가 궁핍한 것이 현실이지만 영화제는 러시다. 워낙 많은 탓이 정확한 그 수를 집계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실정이다. 전국에서 개최되는 수가 200개가량된다고 한다. 이미 명성을 공고히 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위시해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이른바 한국 영화제의 빅3로 꼽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영화제가 난립한 상황은 전국 광역·기초지방자치단체가 243개라는 데 비춰 보면 직감할 수 있다. 산수식 계산으로 풀이하면 243-200(영화제 수)이다.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지역이 드문 것이다. 시선을 강원도로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영화제'라는 용어가 활용되지 않는 시·군이 거의 없다. 지난해 강원도가 앞장서 개최한 제1회 평창남북평화영화제가 열렸는가 하면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도 펼쳐졌다. 춘천시는 '영화특별시'를 선언했다. 하지만 춘천영화제는 관계자의 자중지란으로 영화인들에게서조차 외면당하는 처지다.

강원영상委 분발 불편부당해야

영화제를 주시하는 관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게 마련이지만 평창남북평화영화제가 올해 '평창국제평화영화제'로 명칭을 개칭한 데서 엿보게 되듯 당초 취지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직감케 한다. 2019 영화제 성과와 2020 영화제의 방향 등을 두루 모색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지만 결국은 명칭부터 바꾸는 재출발이다. 사전준비가 미흡했던 데 따른 좌고우면, 갈팡질팡이다. 지역 영화문화, 사업기반이 취약해 이해 관계자의 입장·처지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린 것이다. '도내 영화유치', '영상문화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출범, 3년 차를 맞은 강원영상위원회의 불편부당한 분발이 요구되는 이유다.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받아 조성한 촬영·세트장이 유명무실하기가 다반사다.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흉물로 방치되는 모습이 지역의 문화의식을 의심케 함은 물론이다. 관계자들이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기생충인 셈이다. 영상산업이 대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심도 있게 고민할 일이다. 시늉에 불과한 '적당히'는 상대적 취약성만 노출시킨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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