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귀로 소리를 듣습니다. 소리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정작 귓구멍의 안쪽이 어떻게 생겼는지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귓구멍의 안쪽으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통로를 들어가야 고막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귓구멍에서 고막까지의 소리가 들어가는 통로를 외이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외이도는 우리의 새끼 손가락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좁은데다가 그 통로가 살짝 굽어져 있기까지 합니다. 소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진동이기 때문에, 공기의 진동을 가장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고막과 달팽이관은 매우 얇은 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고막까지의 접근이 어려운 이유는 이렇게 고막과 달팽이관이 외부 손상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잠자리의 날개처럼 얇은 고막에 직접 충격이 가해지면 쉽게 구멍이 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막 안쪽 더 깊은 곳에 있는 달팽이관이 손상되면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조물주는 우리가 듣는 데 필요한 중요한 구조물들이 머리의 깊은 곳에 위치하여 보호되도록 하였고 본인 스스로도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해놓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귀 입구로부터 안쪽으로 손톱 정도의 깊이에 있는 피부는 특별한 기능을 가지는데, 이 부분의 피부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내부를 지킬 수 있는 방어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이 방어물질은 기름성분, 항균성분, 각질 등으로 이루어지고 물, 먼지, 세균과 같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을 일차적으로 막아줍니다. 또한 적절히 산성을 띠기 때문에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냅니다. 이 고마운 방어막을 우리는 귀지(귓밥)라고 부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귀지가 더러워서, 귀를 파면 시원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귀가 너무 자주 가려워서, 또는 귀에 들어간 물을 제거하기 위해 종종 귀를 팝니다. 귀지는 물로부터, 먼지로부터, 벌레로부터 귀 안을 보호해주는 파수꾼이자 보호막입니다. 한번 생성된 귀지는 귀 바깥쪽으로 저절로 천천히 밀려나와 배출됩니다. 귓구멍 주위에 밀려 나온 귀지가 너무 지저분하다 생각이 든다면, 목욕할 때 귓구멍 주위와 바로 바깥 쪽의 귀지만 살짝 한번씩 닦아주면 됩니다. 이때 귓구멍 안은 전혀 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수영장이나 바닷물이 들어갔을 때는 어떨까요. 말씀 드린 대로 우리의 귀 안은 더 안쪽의 중요한 기관들을 보호하기 위해 물과 세균을 막아낼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귀지도 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내기 위해 귀 안을 후빈다면, 아무리 부드러운 면봉이라도 귀 안의 방어막 여기저기에 상처를 주고 세균이 침투할 틈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한번 귀 안에 세균이 들어가고 증식해서 염증이 생기면 큰 고생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당뇨와 같은 지병이 있는 경우, 귀로 들어간 세균이 머리뼈와 뇌까지 번져 얼굴이 마비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귀 안이 너무 자주 가렵다면 일단은 당연히 병원에 가서 염증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염증이 있는 경우에는 병원 치료를 받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귀를 절대로 파지 않고 수개월 이상 참아야 합니다. 왜 특별한 병이 없는데도 귀 안에 심한 가려움을 느끼게 되는지는 의사들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약도 없습니다. 다만 건드리지 않고 수개월 이상 귀 안을 가만히 놔두면, 귀 안은 스스로 회복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차츰 평온을 찾고 가려운 정도와 빈도가 줄어들게 됩니다. 저는 '정 귀를 파고 싶다면 아이가 보는 앞에서는 귀를 파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귀 후비개, 면봉, 자동차 키, 그 무엇이든 귀를 파는 행동을 할 때, 아이들은 옆에서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배우게 됩니다. 고막이 찢어져서 오는 환자의 20%는 어린 꼬마들입니다. 그중에는 안타깝게도 고막뿐만이 아니라 청력의 일부분을 영원히 잃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른 스스로는 누가 뭐라 해도 참을 수가 없어 계속 귀를 판다고 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