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의 심화 속에서 ‘디지털 주권’은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국가 단위에 집중되어 왔다. 데이터의 저장과 유통, 인공지능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논쟁 역시 중앙정부와 글로벌 기업, 혹은 관련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의 문제로 이해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간과하기 어려운 점은 지역 또한 이 구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디지털 주권과 지방 분권은 새로운 방식으로 접속된다. 지방 분권은 단순한 행정 권한의 이양에 그치지 않는다. 지역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는 역량, 곧 자율성과 주체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오늘날 데이터 관련 법·제도와 표준화는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있으며, 플랫폼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은 소수의 글로벌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분권의 취지를 제약하며, 지역을 다시 주변화하는 또 다른 형태의 집중으로 작동한다.
더욱이 디지털 환경은 지역 정체성의 형성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지역 정체성은 역사와 문화, 공동체의 기억과 같은 축적된 자산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반면 오늘날 지역에 대한 인식은 데이터와 콘텐츠를 매개로 재구성된다. 어떤 데이터가 수집되고, 어떠한 서사가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는가에 따라 지역의 이미지와 정체성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디지털 주권은 단순한 기술이나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다시 말해 각 지역은 자국의 고유한 문화를 담지한 데이터를 얼마나 주체적으로 축적·관리하느냐에 따라 정체성 형성의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구·문화 기관의 역할은 한층 중요해진다. 2005년 ‘국학진흥법’ 제정을 계기로 ‘국학진흥 정책기반 조성 사업’이 본격화되었고, 이를 토대로 권역별 국학진흥원이 설립되었다. 강원도는 2025년 강릉시 출연으로 율곡국학진흥원이 설립되었다. 이들 기관은 전통적 학술 연구를 넘어 디지털 전환에 부합하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역 관련 사료와 인물사 등 지식 자산을 디지털화하고, 이를 지역 사회와 연계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지역 주권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된다. 특히 지역의 지식과 기억을 외부 플랫폼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축적·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지식 주권과 문화 주권의 확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율곡국학진흥원을 비롯한 각 권역의 국학진흥기관은 지역 정체성 재구성을 주도하는 핵심 거점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교육·콘텐츠·정책과 연계하는 과정은 단순한 문화사업을 넘어 데이터의 생산과 서사 구성의 주체를 지역으로 환원하는 작업이다.
결국 디지털 전환 시대의 지방 분권은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행정 권한의 분산을 넘어 데이터와 지식, 그리고 지역 정체성을 구성하는 서사에 대한 통제 구조 역시 재편되어야 한다. 지역은 더 이상 수동적인 행정 단위에 머물지 않고, 디지털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정의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디지털 주권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지역 단위로 확장될 필요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축적해온 기관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