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여러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선조를 없애기 위해 궁으로 향하는 이몽학 역할의 차승원이 14년 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전, 란(2024년)’에서는 무능한 선조 역할로 나온 것이다. 또 하나는 정여립(1546~1589)에 관한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정여립이 만든 대동계(大同契)와 관련된 내용을 영화 시작 부분에 배치하고 그것을 갈등의 단초로 작동하게 한다. 대동계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을 기본 이념으로 한다. “천하는 주인이 따로 없다”는 그들의 주장은 당시 집권층인 선조와 서인 세력에게는 그들을 ‘체제를 전복하려는 가장 위험한 역적 집단’으로 인식하게 했다. 게다가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겠는가”라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까지 들고 나왔으니 왕정체제를 거부하는 정여립과 대동계가 제거대상 1순위로 오른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죽도에 숨어있던 정여립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온다. “군관들을 동원시켜 포위 체포하려 하자, 정여립이 손수 그 무리 변사(邊涘)를 죽이고 아들을 찔렀으나 죽지 않자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하므로…(선조실록23권, 선조 22년 10월 17일)” 하지만 이와는 다른 기록도 존재한다. 야사를 정리한 ‘연려실기술’은 정여립이 죽도에서 선전관들에게 죽임을 당했고, 자결한 것처럼 조정에 보고가 됐다고 적고있다. 이를 현대의 언어로 재해석해 본다면 ‘핵심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수사 종결’이 된 셈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주동자의 증언이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1,000여명의 경쟁자(동인)를 없앨 수 있는 절호의 찬스(기축옥사·1589년)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는 정여립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타살로 설정한다. 하지만 이를 정치세력 간의 갈등에 의한 것이 아닌 내부 세력의 소행으로 변모시키는데 바로 정여립을 죽인 범인이 이몽학이라는 것이다. 영화 속 대사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정여립에게 내가 그랬지. 역모로 몰려 죽느니 이 썩어빠진 나라를 쓸어 버리자고…” 대동계로 뜻을 같이하던 이몽학이 선조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정여립을 없애버렸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몇가지 상상력들이 혼재해 있다. 분명 정여립과 이몽학은 역사 속에 실재한 인물들인 것은 맞다. 하지만 어디에도 정여립과 이몽학이 함께 활동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고 시기도 맞지 않는다. 정여립은 임진왜란(1592년)이 시작되기 3년 전 1589년에 세상을 떠났고, 이몽학이 일으킨 난은 1596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혼란기에 충청도 일대에서 벌어진다. 그들의 활동에는 적어도 8년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여립과 이몽학이 기존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지만, 실제 봉기를 일으킨 조직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는 확연히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정여립의 대동계는 군사훈련과 상호부조를 중심으로 한 결사체 성격이 강했다면 이몽학은 실제 봉기를 일으켰기 때문에 두 인물이 궤를 같이 한다고는 볼 수 없다. 재미있는 점은 정여립이 이몽학에 의해 당하는 영화 속 죽음의 설정이 실제 벌어진 역사 속 이몽학의 죽음에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적도들은 몽학의 머리에 현상금이 걸려 있다는 말을 듣고 있던 터라 밤에 몽학의 진영으로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투항해 왔다.(선조수정실록30권, 선조 29년 7월 1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