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랜만에 고향 마을을 찾았다. 동래 어귀에 들어서니 낯선 풍경이 옛 정취를 잊게한다. 어린시절 동래 어르신이 몰던 밭갈이 소몰이 소리는 간대없고 경운기, 트랙터가 매연을 뿜으며 돌아가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낯선 얼굴이다. 언 듯 선배형님이 생각나 집을 찾아갔다. 선배형님도 주름진 얼굴로 나를 반겨주신다. 모든 것이 변해있었다. 오늘따라 옛날 동래들녘 아지랑이가 보고싶다.
옛날 필자가 어린시절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경칩이 지나고 나면 우리 조상들은 농사 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지금은 금지돼 있지만 농부들은 병충해 예방을 위해 논두렁을 태웠다. 고향 뒷동산 진달래꽃봉우리가 분홍빛 꽃망울을 터트리면 호미에 바구니들고 들녘밭에 냉이(나생이) 캐는 아낙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구니에는 냉이, 달래(달롱)등 봄나물 향기가 가득하다. 그날 저녁 밥상에는 달래뽀글장, 냉이국, 냉이무침이 밥상 반찬으로 오른다. 달래뽀글장에 보리밥을 비벼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옛날 우리 아버지는 볍씨를 소독물에 담그고 건져 싹이 트면 못자리에 뿌려 모내기 준비를 하셨다. 요즘은 플라스틱 모판에 볍씨를 뿌려 비닐하우스에서 싹을 틔어 모내기때가 되면 이양기로 모를 낸다. 편리함이 있고, 인력은 덜었지만 모내기 정취가 그립다. 이양기가 보편화 되기 전에는 손모내기가 전부였다. 모내기는 품앗이로 이집 저집 돌아가며 모내기 일정을 잡았다.
모내기 날에는 아침일찍 일꾼들이 모 팔으러 나아가 작은 모판 의자에 앉아 여럿이 어울려 모를 찌기 시작한다. 손발은 이른 아침 차가운 물에 오리발이됐다. 모춤을(모 묶음) 만들어 내어놓으면 지게에 얹어 모내기 논으로 향한다. 논에 도착하면 모춤을 논 여기저기 던져놓아 모내기에 편리하게 배분한다. 일꾼들이 논에 도착하면 못줄꾼 두 사람은 논뚝 이쪽 저쪽 못줄을 늘린다. 일꾼들이 못줄앞에 늘어서면 앞뒤 좌우에 있는 모춤을 잡아 손에 한 움큼씩 빼어 들고 모내기를 시작한다.
이제 논 반어귀쯤 모를 내면 아낙네들이 머리에 새참을 지고 나온다. 들에서는 밥상이 논뚝, 밭뚝이다. “모두 나오세요” 주인네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 모춤을 놓고 논뚝으로 나온다. 물에서 나오면 한 두 사람은 종아리에 거머리가 붙어있어 손으로 떼어내곤 했다. 보릿고개 끝자락에 새참 반찬은 꽁치조림이 인기였다. 그 당시에 밥은 공깃밥이 아니라 사발밥이었다.
온 동네 모내기가 끝나고 논에 모가 뿌리를 내리고 모살이가 끝나면 온 동네 풍악이 울린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깃대를 앞세우고 꾕과리, 징, 피리를 불며 온동네를 한바퀴 돌며 한 해 농사 풍년을 기원하고 모내기에 힘들었던 모두를 위로하며 축제를 열었다.
논에 개구리알의 올챙이가 깨어 나오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커지면 동네 공터에 이동식 가설극장이 찾아오곤했다. 60년대 초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 변사 신출씨의 음성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일부 친구들은 돈 몇푼이 없어 천막을 들추고 숨어 입장하다 감시원에게 발각되어 혼쭐이 나곤했다.
70이 넘은 필자로서는 다시한번 그 시절로 돌아가보고싶은 옛 추억이다. 어느덧 뒷동산 뻐꾸기 울고 밤이면 서쪽새 밤을 지새우면 뒷동산 진달래는 서서히 시들어가고 철쭉꽃이 만개한다. 양지녁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는 할미꽃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채 피어난다. 고향의 봄은 언제나 아련하고 애틋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