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시계가 고장 난 것일까. 해마다 이맘때면 강원자치도의 산천은 설렘과 걱정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동해의 훈풍이 태백산맥을 넘어오며 겨우내 얼어붙었던 대지를 다독이지만, 심술궂은 시베리아의 찬 공기는 여전히 산자락 끝에 매달려 봄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다.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봄과 차마 떠나지 못한 겨울의 기싸움 속에 우리가 기다리는 꽃 소식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안갯속을 걷고 있다. ▼기상청의 예보는 올해도 어김없이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점치며 성급한 봄맞이를 부추긴다. 하지만 수치로 계산된 평균의 온도가 생명의 온전한 개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난 몇 년간의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2023년 만우절 거짓말처럼 흐드러졌던 춘천의 벚꽃이 이듬해에는 일주일이나 늑장을 부렸고, 강릉의 경포호반 역시 변덕스러운 날씨에 개화 시기를 앞뒤로 조절하며 상춘객들의 마음을 애태웠다. 춘천 신북읍 부귀리의 벚꽃 터널은 기후 위기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아픈 손가락이다. 축제를 알렸으나 꽃봉오리는 굳게 입을 다물어버린 풍경은 낯설지 않다. ▼하루 평균 기온 5도의 안온함이 유지돼야 비로소 꽃은 제 빛깔을 내는데, 15도 넘게 벌어지는 일교차는 자연의 섭리마저 어지럽히고 있는 현실이다. 지자체들은 하늘의 눈치를 보며 ‘탄력적 조정’이라는 고육지책을 내놓고 있다. 강릉의 경포, 속초의 영랑호, 그리고 춘천 부귀리까지 저마다 축제 날짜를 정해두었지만 정작 주인공인 꽃이 언제 무대에 오를지는 모른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강수량과 최저기온, 개화율을 일일이 살피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흡사 자식의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과 닮았다. ▼꽃은 단순히 기온의 산물이 아니다. 적당한 햇살과 바람, 그리고 밤의 정적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대지의 예술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기후 변화는 이 섬세한 예술의 박자를 흐트러뜨려 놓았다. 꽃이 피는 순서가 뒤섞이고, 필 때를 잃어버린 꽃들이 방황하는 풍경은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