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서는 2026년 3월 12일, 마치 오대산의 눈발이 잦아들듯 고요히 적멸의 길로 드셨습니다. 오대산의 푸른 갈기를 뒤로하고 떠난 스님의 영정 앞에서 우리는 간절하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행스님, 스님이 간 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에도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고 있습니까?” 이 물음은 곧 스님께서 평생 우리에게 던지셨던 ‘본래면목(本來面目)’에 대한 화두와 닮아있습니다. 스님은 한암, 탄허, 만화 스님이라는 ‘오대산 삼화상’의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실천한 ‘아난다’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른 스님들의 정진력을 본받아 세수 팔십이 넘어서도 새벽 탑돌이를 거르지 않으셨고, 수행자의 일상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스님의 삶에는 아물지 않는 상처도 있었습니다. 1980년 10·27 법난 당시 강제 연행되어 겪으신 고문은 평생 후유증으로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스님은 증오 대신 진실 규명을 택하셨습니다. “역사의 법정에는 시효가 없다”고 외치면서도, 그 아픔이 불교와 사회 발전의 자양분이 되길 바라셨던 스님의 마음은 진정으로 깨어 있는 수행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은 가는 곳마다 무너진 도량을 일으켜 세우는 ‘불사의 달인’이셨습니다. 월정사 대웅전 중창을 돕고, 폐사 직전의 대전 자광사를 일으켰으며, 동해 삼화사의 노사나철불을 복원하여 국가 보물로 지정받게 하셨습니다. 구룡사 법당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을 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천일기도로 다시 도량을 복원한 일화는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스님에게 가람 수호는 곧 수행이었습니다. 하루 8시간씩 목탁을 치며 염불하던 그 지극한 원력은 미래 불교의 근원지를 마련하고자 했던 스님의 간절한 서원이었습니다.
원행 대종사여, 이제 무거운 육신의 짐도, 고문의 아픈 기억도, 거대한 가람의 무게도 모두 내려놓으소서. 스님께서 평생 그렸던 화엄의 연화세계에서, 이제는 '멀리 가는 이(遠行)'가 아니라 ‘이미 도착한 이’로서 평온을 누리소서. 스님께서 가신 그곳에도 분명 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뜰 것입니다. 스님의 미소처럼 따뜻한 해가 우리를 비추고, 스님의 계행처럼 맑은 달이 우리의 앞길을 밝혀 줄 것입니다. 스님께서 남기신 ‘멍청이’라는 이름의 고귀한 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