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강원지역대학 졸업식 현장. 수많은 졸업생 사이로 단상에 오른 칠순의 만학도가 식장을 정적과 감동으로 메웠다. 주인공은 화천에 거주하는 오희남(74)여사. 그녀는 이날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낭독하며 10년에 걸친 위대한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 스무 살에 멈췄던 시계, 64세에 다시 돌리다= 오 여사의 졸업장은 단순한 학위 증서가 아니다. 생계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 직후 책장을 덮어야 했던 한 소녀의 50년 묵은 한(恨)이 녹아 있는 결정체다. 20세에 결혼해 생업과 육아라는 거친 파도를 넘으며 반세기를 보낸 그녀는 환갑을 넘긴 64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을 위한 책상을 마주했다. 2016년 방송통신중학교 입학을 시작으로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교육학과 졸업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을 한결같이 달렸다. 67세에 중학생, 70세에 고등학생, 그리고 74세에 대졸자가 된 그의 행보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격언을 몸소 증명한 증거였다.
■ “졸업장 없어서 안 된다”는 편견에 실력으로 답하다= 그녀의 도전은 단순히 ‘가방끈’을 늘리기 위함이 아니었다. 손주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싶어 시작한 동화구연은 그의 인생에 새로운 불을 지폈다. “초졸 학력으로는 상위 자격증을 딸 수 없다”는 벽에 부딪혔을 때, 오 여사는 좌절 대신 “더 배워야겠다”는 오기를 선택했다. 그 결과는 눈부셨다.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도전한 ‘동화구연 1급’ 자격시험에서 그녀는 수십 명의 응시생 중 단 2명뿐인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대 졸업생도 낙방한다는 험난한 시험을 칠순의 집념으로 뚫어낸 것이다.
■ 50년 만에 입은 교복, 그리고 눈물 젖은 수학 문제지= 학업 성취 결과는 화려한 수상 이력이 말해주고 있다. 재학 시절 학력우수상과 공로상은 물론, 강원도교육감 표창과 국회의원 표창까지 휩쓸었다. 하지만 오 여사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은 고교 시절 총학생회장을 맡아 ‘교복’을 입고 졸업사진을 찍던 순간이다. 50년 전 남들이 입은 교복을 바라만 봐야 했던 소녀의 꿈이 칠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뤄졌기 때문이다.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하나를 붙잡고 며칠 밤을 지새우다 인근 고등학교 교사를 직접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원거리 동아리 수업을 지켰던 열정은 주변 젊은 학생들에게도 큰 귀감이 되었다.
■ “배워서 남 주는 삶, 이제부터 시작”= 오 여사는 “이제는 배운 것을 잘 활용해 가족과 이웃을 행복하게 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비쳤다. 그 꿈은 ‘어린이책 스토리텔러 1급’ 자격을 바탕으로 요양원과 복지시설에서 시 낭송과 동화구연 봉사를 하며 ‘남주는 배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엑셀과 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활용 능력까지 섭렵하며 ‘디지털 만학’의 길을 걷고 있다.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켜온 남편 이대성(77) 씨는 “형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아내의 세월을 잘 안다”며 “늦게라도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 그저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졸업식을 마친 오희남 여사의 환한 미소는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는 고귀한 희망의 이정표를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