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프리즘]스위스 10초의 비극과 우리의 지방자치

임도빈 서울대 명예교수

그림같이 아름다운 스위스를 갈 때마다 질문을 던진다. “왜 강원도는 저렇게 못 사는가?” 만년설 덮인 고봉(高峰)이 없다는 것 말고는 부족할 게 없다. 하지만 에베레스트를 가진 네팔은 여전히 최빈국이다. 자연은 조건일 뿐, 결과가 아니다. 스위스 역시 150년 전에는 가난한 산골짜기에서 양치기와 치즈로 연명하는 최빈국이었다. 프랑스와 로마에 건장한 아들들을 용병으로 팔아 외화를 벌어야 했던 나라였다.

변화의 시작은 '국토 대개조'라는 과감한 인프라 투자였다. 1865년 에드워드 윔퍼의 마터호른 정복 이후, 스위스는 거대한 알프스를 뚫는 터널과 산악철도를 깔아 전 세계의 부(富)를 긁어모으는 럭셔리 관광 대국으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살인적인 물가로 인해 유럽 패키지 여행에서 제외되는 나라, 인구 800만 국민들이 1인당 소득 10만 불을 상회하며 행복하게 사는 스위스 저력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돈과 인프라라는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닌 '완벽한 분권'이라는 소프트웨어에 있다. 국토중앙의 거대한 알프스라는 장애물을 사이에 두고 계곡을 따라 형성된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주민총회 위주의 민주정치행정 제도를 축적해왔다. 어느 누구도 지배적 권력을 향유할 수 없도록 권력을 ‘완벽할 정도로’ 분산시킨 나라, 그 완벽함은 행정의 말단까지 스며들어 ‘함께 사는 생활자치’로 정착되었다.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해 환경을 2중, 3중으로 옭아매는 규제는 역설적으로 스위스를 지상천국으로 만들었다. 즉, 스위스는 '완벽한 규제 투성이 국가'였기에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새해 첫날, 이 ‘완벽한 선진국’의 신화는 비명과 함께 무너졌다. 휴양지 크랑-몽타나의 지하 파티장에서 41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110여 명이 부상하는 믿기 힘든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요란한 음악과 춤을 추는 가운데 아빠의 어깨에 올라탄 아이가 든 케이크의 촛불이 순식간에 천장으로 옮겨붙었고, 좁은 퇴로에 몰려되는 인파들이 압사당했다. 이태원 참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조사결과는 세월호를 연상케 한다. 천장에는 난연 처리가 안 된 저가 스티로폼이 붙어 있어서, 불이 옮겨붙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초였다. 건물주는 영업공간을 늘리려 비상구를 폐쇄했고, 대피로는 좁아 터진 구조였다. 더 경악할 것은 행정의 무능이다. 법적 의무인 정기 안전 점검을 지난 6년간 단 한 번도 받지 않았고, 대피 훈련조차 전무했다. '완벽함'이라는 국가 브랜드 뒤에서 지역 업소에 대한 감시 시스템은 무너져 있음을 몰랐었다.

이 비극은 우리에게 준엄하게 경고한다. 법조문의 완비나 화려한 신기술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결국은 ‘사람’과 ‘현장’이다. 중앙정부의 표준 규제가 현장에서 무력화되는 이 ‘스위스적 모순’을 목도하며, 우리는 지방자치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생명과 행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지방살리기를 한다고 무엇이든 ‘돈’으로 먹칠하는 공약을 믿지 말아야 한다. 현장과 유리된 중앙의 탁상행정이 아니라, 내 이웃의 안전을 직접 챙기는 '진짜 지방자치'만이 이런 어쳐구니없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규제가 단지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니라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방패가 되도록, 우리의 지방자치는 이제 '현장 중심'으로 처절하게 거듭나야 한다. 단체장, 지방의원을 위한 자치가 아니라, 사람 중심의 자치가 실현되지 않는 한 스위스 10초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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