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한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 지역이 확정되며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농어촌 주민에게 일정한 금액을 지급해 지역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려는 이번 정책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농어촌기본소득은 헌법이 보장한 지방자치와 분권의 이념을 구체화하는 제도 실험이다. 지역이 스스로 주민의 복리와 경제 구조를 설계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때, 국가균형발전의 토대가 비로소 마련된다. 중앙이 아닌 지역이 주체가 되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분권의 실현이다.
그러나 이번 시범사업은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소멸위기지역만을 선정 대상으로 한 제한적 구조로 인해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지속되는 ‘관심지역’ 인제군이 신청조차 할 수 없었던 점은 제도의 경직성을 보여준다. ‘지방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69개 군을 대상으로 사업 신청을 받은 결과, 49개 군(71%)이 신청했고, 69개 군이 속한 10개 광역자치단체 모두가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 정책에 대한 지방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범사업이 특정 지역에만 집중되며 주변 지역의 인구와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공동화 현상이 우려된다. 한정된 지역에 지원이 집중될 경우 오히려 인접 시·군의 인구가 유출되고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농어촌기본소득의 본래 취지는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농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 따라서 사업의 범위는 소멸위기지역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위험 신호가 감지되는 관심지역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제도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국가적 사업임에도 공모 방식으로 추진해 지역 간 경쟁을 유도한 점은 구조적 한계로 지적된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선택된 일부 지역의 실험이 아니라,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한 축으로 제도화돼야 한다. 국비 비율을 높이고, 재정 자립도가 낮은 군 단위 지역에는 별도의 재정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책의 방향 역시 분명해야 한다. 농어촌기본소득은 단기적으로 지역 내 소비 촉진과 상권 회복, 중장기적으로 공동체 복원과 청년 정착 기반 조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역이 스스로 재원을 창출하고 순환시킬 수 있는 수익형 구조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제군은 방태산·설악산·내린천 등 산림과 생태자원 등 관광 인프라, 청정 자원을 활용한 친환경 사업 등을 통해 ‘수익형 인제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유림과 군유림을 연계한 탄소흡수권·산림바이오매스 사업, 재생에너지 기반의 에너지 순환형 지역사업 역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농어촌기본소득의 성공은 지방이 스스로의 자원을 활용해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고 그 성과를 주민과 공유하는 구조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분권을 바탕으로 제도 확대에 나서야 하며, 지방은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자립형 모델을 구체화해야 한다. 농어촌기본소득은 농촌의 회복을 넘어 국가균형발전을 이끌 새로운 제도적 기반이다. 인접 지역의 공동화 현상을 예방하고, 전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제도로 정착될 때 대한민국의 농어촌은 다시 사람이 머무는 터전으로 거듭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