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정회철의 '우리 술 이야기'] 전통주 빚기(1)'

전통주는 쌀, 누룩, 물만 있으면 빚을 수 있다. 얼핏 보면 간단하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술빚기 중 하나가 한국의 전통주이다. 와인은 포도를 으깨서 여기에 효모를 넣어주기만 하면 끝이다. 그래서 와인의 품질은 양조기술 보다는 원료에서 차이가 난다. 어느 해에 어느 지방에서 재배한 포도인지, 포도품종은 어떤 것인지가 와인의 품질을 좌우한다.

맥주 만드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간단하게 말해 우리가 잘 먹는 식혜에 효모를 넣어주면 맥주가 된다. 다만 맥주의 거품을 만들기 위해 가열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가열을 통해 단백질분해효소를 제거하면 단백질이 그대로 남아 탄산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주어 맥주의 거품이 되는 원리이다.

전통주 양조=1. 항아리 소독
전통주 양조=2. 쌀씻기

우리는 문헌상 2,000년이 넘는 양조역사를 갖고 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1992년 자가양조가 허용되기 까지 80년 가까이 전통주역사가 단절되는 바람에, 조상들의 양조기술이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전승된 경험 자체가 없으니 경험에 의지해서는 좋은 술을 빚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자가양조가 금지된 기간 동안에도 우리 조상들은 밀주를 빚어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밀주는 관원에 단속되지 않기 위해 술의 품질은 고려되지 않은 채 속성주가 많이 발달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다. 그 밀주조차 한 세대 전에 대부분 끊어져서 지금은 직접 술을 빚는 집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과거의 다양하고 화려한 우리 전통주 비법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술을 잘 빚기 위해서는 부득이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전통주의 양조원리를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한다.

전통주 양조=3. 고두밥찌기
전통주 양조=4. 고두밥식히기

■ 알코올 발효=발효와 부패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 다 미생물이 작용하여 유기물을 분해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발효’는 인간이 섭취하기에 유익한 물질을 생산하고, ‘부패’는 인간이 섭취하기에 유해한 물질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러한 발효에는 술과 같은 알코올발효가 있고, 김치나 요구르트의 젖산 발효, 식초의 초산발효, 젓갈의 아미노산발효, 된장•간장의 단백질발효가 있다.

그 중에 알코올발효에 대해서 살펴보면, “모든 술은 당으로부터 만들어진다.” 당의 종류에는 단당류, 이당류, 올리고당, 다당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술이 될 수 있는 것은 단당류와 이당류이다. 단당류와 이당류는 효모에 의해서 분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당류로는 포도당과 과당, 벌꿀이 있고, 이당류로는 우유의 유당, 설탕, 맥아당이 있다. 다당류의 대표로는 전분이 있다. 가장 쉽게 술 빚는 방법은 집에 있는 설탕을 물에 타서 적당히 당도를 맞춘 후에 배양효모나 누룩을 넣는 방법이다. 효모에 의해 설탕이 분해되어 술이 되는 것이다. 근래에는 국내에서도 벌꿀을 발효시켜 만든 미드(mead)가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주 양조=5. 혼합하기
전통주 양조=6. 항아리에 담기

■ 전통주의 발효=전통주의 원료는 전분질이다. 쌀, 수수, 보리, 옥수수 등의 곡류가 있고, 감자, 고구마의 서류가 있다. 이러한 전분질은 다당류로서 효모에 의해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알코올발효를 하려면, 먼저 전분을 단당류 또는 이당류로 잘게잘게 쪼개야 한다. 이 쪼개는 과정을 ‘당화작용’이라고 한다. 쪼개는 것은 누룩곰팡이가 한다. 누룩곰팡이의 균사가 뻗어 나가면서 ‘효소’가 생성되고, 이 ‘효소’에 의해서 전분이 분해되어 단당류인 포도당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밥을 입에서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당화가 끝나면, 이번에는 ‘효모’가 그 포도당을 분해해서 알코올을 만드는데, 이를 ‘발효작용’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 술의 양조과정은 쌀이 포도당으로 되는 ‘당화작용’과 포도당이 알코올(술)로 되는 ‘발효작용’이 결합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한국 전통주가 빚기 어려운 이유는, 이러한 당화작용과 발효작용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당화조건과 발효조건이 같지 않아,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한가지만 예를 들면, 당화가 잘 되려면 온도가 높아야 되는데,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효모가 죽게 되어 발효가 안된다. 그렇다고 온도를 낮추면 당화가 잘 안된다. 그래서 발효에는 온도가 아주 중요하다. 25℃ 내외로 맞추어야 하고, 안되더라도 ±3℃를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온도가 낮으면 발효가 잘 안돼 신맛이 강하고, 온도가 높으면 의도하지 않은 단맛이 강하게 날 수 있다. 이를 산패, 감패라고 한다.

알코올발효는 혐기성이므로, 산소가 공급되면 안된다. 산소가 있으면 효모는 알코올발효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하고 생장한다. 산소가 없어야 생장을 멈추고 살기위한 최소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당을 분해한다. 그 부산물이 알코올인 것이다. 호흡과 발효는 반대개념이다. 우리가 술항아리 뚜껑을 덮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항아리 뚜껑을 덮으면 산소가 차단되어 혐기성의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항아리 뚜껑을 보면 완전 밀폐가 아니다. 그렇다면 뚜껑 틈 사이로 공기가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발효과정에 열이 발생하는데, 항아리 내부의 온도가 35℃가 넘어가게 되면 효모가 죽거나 활동이 정지상태에 들어가고, 불완전발효가 생긴다. 그런데 항아리 뚜껑의 틈 사이로 탄산가스가 빠져나가면서 열도 함께 빠져나간다. 그리고 항아리 안에는 탄산가스로 가득 차 혐기성의 조건도 갖추게 된다. 한편 보면 한국의 항아리야 말로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는 것 같다.

우리가 술을 빚을 때에는 먼저 쌀을 씻은 후 물에 불리고, 증기로 찐다. 그 다음에 증기로 찐 고두밥을 식혀서 여기에 물과 누룩을 섞어 치댄다. 그러면 왜 생쌀로 술을 빚을 수 없을까? 생쌀로 술을 빚을 수 있으면 과정이 단축되어 아주 편하게 술을 빚을 수 있을텐데... 국내에서도 생쌀을 발효해서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 있다. 느린마을 양조장, 국순당, 배혜정도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전통누룩으로는 생쌀 분해가 되지 않아 생쌀로는 술을 빚을 수가 없다. 따라서 쌀을 물에 불리고 증기로 고두밥을 찌는 것이다.

전통주 양조=7. 면보덮기
전통주 양조=8. 발효

■ 전통주 양조의 실제과정

1. 소독

제일 먼저 항아리를 소독한다. 술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보통 증기살균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냄비에 물을 붓고 그 위에 항아리를 거꾸로 올려놓고 증기로 살균하는 방식이다. 물이 끓은 후 최소한 20분 이상 살균하여야 한다.

2. 쌀 씻기

쌀에 묻어있는 먼지나 이물질, 그리고 단백질 일부 및 칼슘이나 아미노산 등의 수용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쌀을 씻는다. 세미는 백미의 1~2% 정도의 도정효과가 있다. 이 때 쌀끼리 마찰에 의해 씻겨 지도록 물양을 적절히 조절하여야 한다.

3. 쌀 불리기

적어도 3시간 이상 쌀을 불린다. 적게 불려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오래 불러도 문제이다. 오래 불리면 무기물이 빠져나와 효모의 영양력 부족으로 발효력이 저하될 수 있다. 멥쌀은 찹쌀보다 오래 불린다. 찹쌀은 3시간, 멥쌀은 5시간 정도 불리면 된다.

4. 물빼기

쌀을 다 불린 후에는 5~10 차례 행군 후 채반에 담아 물을 뺀다. 물이 충분히 빠지지 않으면 고두밥이 질게 되기 때문에 물을 확실히 빼주어야 한다. 1시간 이상 빼주면 좋다.

5. 고두밥 찌기

고두밥은 찜통에 쌀을 넣고 증기로 찌면 된다. 일반 먹는 밥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일반 밥처럼 하게 되면 쌀 안에 전분질이 흘러나와 쌀을 코팅시켜 술균의 침투가 어렵기 때문이다.

6. 고두밥 식히기

다 쪄진 고두밥은 널대에 펼쳐 놓고 식힌다. 높은 온도에서는 미생물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손등으로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면 된다. 가능한 한 넓고 얇게 널어놓아 빨리 식을 수 있도록 한다.

7. 혼합하고 치대기

식은 고두밥을 대야에 담아, 물과 누룩을 함께 고루 섞는다. 대충 혼합이 끝나면 치대기 시작한다. 손바닥을 이용해 수직으로 고두밥을 눌러다 떼었다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된죽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한다.

8. 항아리에 담기

치대기가 끝나면 항아리에 담는다. 술덧의 양이 술독 크기의 80% 정도가 적당하다. 꼭꼭 눌러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항아리에 전부 담았으면 항아리 밖과 안을 깨끗이 닦아주고, 면보를 덮는다.

9. 발효

25℃ 정도에서 발효시킨다. 항아리에 들어있는 술덧양과 들어간 물양에 따라 발효기간이 달라진다. 술덧양이 적을수록, 그리고 물양이 많을수록 발효기간이 짧다. 물이 많은 술은 발효중에 올라온 밥알이 가라앉는 때가 발효가 끝나는 시점이다. 물이 적은 술은 맑은 술이 술덧 위로 비치는 시점에서 발효가 끝났다고 보면 된다.

10. 술거르기

발효가 끝나면 면주머니에 술덧을 부어 짜면 된다. 발효가 잘 된 술은 밥알이 잘 삭아서 짜기가 편한 반면, 발효가 잘 안된 술은 걸쭉하니 짜기가 불편하다. 거른 술은 탁주 또는 약주 상태로 냉장 저장 및 숙성한다.

◇정회철 전통주조 예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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