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관세 전쟁'의 분수령이 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중 정상회담이 2박3일 동안 숨 가쁘게 이어진다.
30일 김해공항에 도착하는 시 주석은 방한 첫 일정으로 부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연다.
두 사람의 대좌는 2019년 6월 일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6년 4개월여 만이다.
올해 초 '트럼프 2기' 미 행정부가 출범하고 4월부터 미중이 서로 고율 관세와 무역 통제 조치를 주고받은 이래 처음으로 양국 정상이 마주 앉는 것이기도 하다.
양국 갈등은 한때 상호 간에 100% 넘는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 단절 수준으로 치달았으나, 이달까지 고위급 회담을 연이어 열면서 '일시 휴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고, 미국이 이에 '추가 100% 관세' 등으로 맞불을 놓는 등 양국은 언제든 전면전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위협도 하는 상황이다.
다만 미중 무역 대표가 정상회담 의제를 최종 점검한 25∼26일 말레이시아 협상에서 '각자의 우려를 해결하는 계획'에 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 만큼 두 정상이 부산 정상회담에서 '확전 자제' 합의를 내놓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유예하고, 미국은 내달 1일부터 시행키로 했던 100%의 대중국 추가관세 부과를 보류할 것이라는 점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등에 의해 이미 언급된 바 있다.
여기에 양국은 미국의 대중국 '펜타닐 관세' 10%포인트 인하와 중국의 미국산 대두(콩) 수입 재개를 맞교환하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상호 부과하는 선박 입항 수수료 인하나 미국의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 완화 등도 논의 가능성이 있는 의제로 꼽힌다.
최종 결정권을 쥔 두 사람의 담판을 통해 무역 협상의 '판'이 커질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양국의 또다른 쟁점인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 안보 문제는 일단 핵심 의제에서 다소 비켜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대만과 관련한 논의를 할지조차 모르겠다. 그(시 주석)가 물어보길 원할지도 확실치 않다. 대만은 대만이다"라며 "하지만 솔직히 대만과 관련해 아름다운 부분은 우리가 많은 반도체 제조사를 미국으로 유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번 회담이 오랫동안 갈등으로 점철돼온 미중 관계를 재정립하고 첨예한 이해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세기의 담판'으로 이어지기보다, 당장 시급한 대립 요인만 일시 봉합하는 '잠정적 타협' 자리가 되거나 아예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초에 시 주석의 초청에 따라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공언해왔다는 점에서 미중 간 초대형 담판은 그때까지 미룰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인 2014년 7월 시 주석이 방한했을 당시 한중 관계는 '정열경열'(政熱經熱·정치와 경제가 모두 뜨겁다)이라는, 지금으로선 낯설기까지 한 표현이 나올 정도로 가까웠다.
11년이 흐른 현재 한중 관계는 껄끄러운 상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집권기 한미일 공조 강화와 윤 전 대통령의 대만해협·남중국해 발언 등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한중 관계는 얼어붙었다.
한중의 경제 관계가 '상호보완'에서 '경쟁' 관계로 변화했고, 미중 갈등과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심화, 중국의 공세적 대외 정책 속에 한국이 종전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노선을 쉽게 선택하기는 어려운 구조에 놓여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밀접하고 경제적으로 긴밀하며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양국이 아직 서로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점에는 한중 모두 이견이 없다.
그런 만큼 중국 조야에서는 '실용 외교'를 표방한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이 내달 1일 개최할 정상회담이 한중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의제 면에서는 시 주석이 한국 역시 미국의 무역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한중 협력에 무게를 싣자는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정식 발효 10주년을 맞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의 2단계 협상 가속화나 상호 무비자 정책 확대, 문화·과학기술 교류 확장 등을 비롯해 최근 중국이 강조하고 있는 공급망 안정·다자무역 수호 등이 거론될 수 있다.
한국이 관심을 가진 중국의 희토류 등 전략 광물 수출 통제 문제나 기업 경영 활동 장애물 등 경제 문제와 '핵 보유국'을 선언한 북한 문제도 논의 테이블 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 주석이 양국 문화 교류에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만큼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이후 이어지고 있는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문제에서 전향적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이런 가운데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거론한 '핵추진잠수함' 문제는 막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29일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에서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측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면서 한국군이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해 방어 활동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시 주석을 국빈으로 초청한 한국에서 중국을 겨냥한 전략 무기 도입을 거론한 것을 외교적 결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시 주석은 '정상외교 슈퍼위크'인 이번 경주 APEC에서 회의 연설 및 각국 정상과의 회담을 통해 다자주의·자유무역 국제 질서 수호와 개발도상국 권리·발언권 확대 등 근래 반복해온 입장을 거듭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모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자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깔린 메시지다.
중국은 왕이 외교부장이 27일 각국 대사를 초청한 포럼에서 "다극화한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이제 미국이 패권을 독차지하던 세상이 이미 끝났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시 주석이 APEC 기간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와 양자 회담을 열지도 관심을 끈다.
중국은 그간 일본 총리가 취임할 때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축전을 보낸 관례와 달리 이번에는 리창 총리 명의의 축전만 발송했고, 관영매체를 통해 그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거나 난징대학살을 부정해온 다카이치 총리를 직설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불편한' 분위기를 보여주듯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미중·한중·한일 등 주요국 정상회담 일정이 속속 잡히는 가운데도 중일 정상회담 소식만큼은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다만 왕이 부장이 28일 중일 외교장관 통화에서 고위급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상회담 개최 여지를 열어뒀다는 관측이 나왔다.
교도통신은 29일 소식통을 인용해 중일이 오는 31일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중국 외교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한국에서 일중 정상의 첫 대화를 개최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그 회담에 대해선 현재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고 답했다.
교도통신은 오는 31일 중국과 일본 정부가 경주에서 중일 정상회담 여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고 29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회담이 성사되면 시 주석과 지난 21일 취임한 다카이치 총리 간 첫 정상회담이 된다.
시 주석은 오는 30일부터 2박 3일간 국빈 방한하며 다카이치 총리도 같은 날 방한해 11월 1일 귀국 예정이다.
앞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28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과 통화에서 "중국은 일본 새 내각이 보낸 몇몇 긍정(積極)적 신호에 주목했고, 고위급 교류는 중일 관계 발전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며 "새 내각이 대(對)중국 교류의 '첫걸음'을 잘 내딛고 '첫 단추'를 잘 끼우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