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기가 바뀌고 있다. 땡볕 늦여름에서 가을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낮은 폭염이 지배하고 밤은 더위가 불침번을 서고 있는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지만, 완연한 하늬바람은 아니다. 작열하는 여름의 마파람이 가을 절기를 알리는 갈바람으로 빨리 바뀌길 바랄 뿐이다. 세월은 쉬지 않고 계속 달려도 절기를 놓치는 법이 없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처럼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게 마련인데, 세월과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늙지도 않고 심지어 고장나지도 않는다.
알 수 없는 무한대의 공간에 흘러오는 시간의 법칙 아래 사람은 그 틀에 갇혀 일생을 지낸다. 시간을 저축할 수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의미있게 활용하고 선용할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흐르는 세월에 따라 신체는 늙어간다. 나이가 들면 신체의 변화를 쉽게 알아보고, 그 주기에 따라 신체 기능과 활동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생자필멸의 법칙이자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월을 거슬러 흐르는 게 있는 것 같다. 마음과 정신이 그게 아닐까 생각한다.
태고시대의 거인들을 제외하고 보통 인간의 키는 2m이내 이지만, 마음만큼은 심연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몸은 야위어가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신체는 세월의 숨결을 비껴가지 못하지만, 마음만큼은 청춘으로 계속 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로 우리를 일깨우는 시대의 지성, 106세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잠언이기도 하다. 김 교수의 이야기에 의하면, 사람은 나이들면 자연스럽게 신체적으로 늙어가고 기억력이 쇠퇴하지만 정서적으로 규칙적인 독서, 긍정적인 학습 사고를 실천하면 마음의 청춘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다. 90세가 넘어 보니, 그 이전에는 신체가 정신을 이끌고 왔는데, 그 이후에는 정신이 신체를 끌고 가더라는 것이다. 노년이 되어도 책을 읽고, 정례적인 일을 하고, 마음에 맞는 취미생활을 청춘의 비결로 꼽았다.
유태계 미국의 시인,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청춘’이라는 시가 있는데, 거기에도 청춘의 비결을 문학적 아우라로 잘 표현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김형석 교수 이야기와 사무엘 울만의 시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이다. 정신과 마음은 나이 드는 것에 벗어나 무한대의 젊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경우 마음이 먼저 일어나 그 일을 할 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이 갖고 있는 긍정, 호의, 인정, 창의성, 호기심 등은 마음을 더욱 젊고 설레게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우리가 세파 속에서 힘들더라도 이런 요인을 내면 깊이 품고 다니면 청춘의 마음을 계속 유지하지 않을까 싶다.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강릉은 극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기후 위기가 우리 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강릉시의 리더십을 구심점으로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시민 모두가 최악 가뭄에 총력 대응하고 있다. 절수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의 지극정성은 하늘을 감동시킬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빨리 만들어 시민 모두가 행복한 일상을 되찾길 바란다. 부질없는 생각의 속삭임을 떨쳐 버리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 때 삶은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시들지 않는 청춘의 마음으로, 기갈 들린 대지에 해갈의 기쁨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