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원 압박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함께 뛰놀며 감수성을 회복합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아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줍니다. 필요 경비는 강원도교육청에서 지원합니다.” 서울을 찾았을 때 옛 동료가 보여준 홍보문구의 일부다. 도시 학생들이 강원도로 내려와 생활하는 ‘농촌유학’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순간 마음 한켠에 묘한 불편함이 스쳤다.
농촌유학은 도시 학생이 농촌 학교로 전학해 최소 6개월 이상 생활하는 제도다. 가족 체류형, 농가 스테이형, 유학센터형 등으로 운영되며 거주 공간과 비용은 지자체와 교육청이 부담한다. 도시의 경쟁적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을 체험하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경제적 부담이 거의 없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실제로 서울시교육감이 이 제도를 ‘준의무화’하겠다고 언급할 정도로 관심을 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최근 강원도교육청에 따르면 농촌유학 참여 학생 수가 지난해보다 네 배나 증가했다. 현재 9개 지역, 17개 학교에서 운영 중이며, 긍정적 반응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의식이 숨어 있다. 과연 이 제도가 강원도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적 의미를 주고 있는가.
엄밀히 말해 농촌유학은 도시 학생을 위한 제도다. 강원도의 아이들은 이미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간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머물다 가는 도시 친구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통로다. 텅 빈 교실을 도시 학생으로 채우고 그 곁에 강원 아이들을 들러리로 세우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수십억 원을 도시 학생 유치에 쓰기보다, 강원 아이들의 미래 교육을 위해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 옳다.
강원도의 학생 수는 이미 수원시 학생수 수준으로 줄었으며, 머지않아 10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형적 학교 유지만을 목표로 한 정책은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 소규모 학교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1억 원에 육박하고, 교직원 수가 학생 수보다 많은 이른바 ‘한계학교’가 50여 개에 달한다. 겸임·기간제 교사의 급증, 자연폐교의 확대 등 부작용도 이어지고 있다. 교육행정이 본질을 외면한 채 사소한 성과에 매달리는 모습은 도민에게 불안을 안길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소규모 학교의 적정규모화, 학생 맞춤형 프로그램 정착, 외국어·미디어·AI 중심의 미래형 교육과정 마련, 세계 유수 기관과의 교류 확대가 그것이다. 교육의 본령에 충실하면서 아이들이 미래 사회를 주도할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농촌유학의 성과를 치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은 착잡하다. 시대정신을 거스르는 정책은 지역 교육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교육은 단기 성과를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다. 긴 안목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이끄는 것이 교육정책의 존재 이유다. 농촌유학은 도시 아이들에게 추억이 될 수 있지만, 강원 아이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불과 10여 년 전, 도시 학생들이 몰려들어 메스컴을 장식했던 강원도의 학교들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의 시선을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