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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빛 대형 건물에 신음하는 낙산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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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천혜경관이 사라진다]초고층 숙박시설에 파묻히는 천년고찰 낙산사
낙산해변 일대 20층 이상 초고층 생활형 숙박시설 우후죽순…최고 49층도

관동팔경 중 하나인 낙산사와 의상대가 인근에 있어 오랫동안 관광·휴양 명소로 사랑받아온 양양 낙산해변이 해안을 따라 4개 동의 고층 생활형 숙박시설과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며 아름다운 광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양양=권태명기자

설악산과 동해바다가 어우러지며 한 폭의 그림처럼 천혜절경을 자랑했던 양양 낙산해변가가 난개발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관광객들은 휴식을 위해 낙산을 찾았지만 우후죽순 들어서는 고층건물과 기존 대형 폐건물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하로동선(夏爐冬扇)’격의 부자연스러움에 피로감 마저 호소하고 있다.

체감온도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9일 오후. 낙산해수욕장에는 불볕더위 탓인지 오히려 피서객들은 한산한 반면 낙산해변과 맞닿은 약 2㎞ 주변에는 4개의 고층건물 공사가 한창 이었다.

생활숙박시설로 불리는 고층건물들로, 이미 20층 이상의 건물 2곳은 영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양양군에 따르면 2021년 전·후로 문을 연 2개 생활숙박시설 이외에도 현재 4개의 생활숙박시설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9개소의 생활숙박시설은 허가 및 건축심의를 끝내고 착공을 준비중이다.

계획대로라면 향후 낙산해변 일대에는 지상 18층에서 최대 49층 규모의 고층 생활숙박시설 9개가 들어서게 된다.

건물들은 별도로 지역에 맞는 디자인과 가이드라인이 없는 데다 대부분 '바다뷰'를 이유로 바닷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낙산해변이 자랑하던 조화로운 해안선의 풍광은 사실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해변과 바다에서 고즈넉한 낙산사와 함께 볼 수 있었던 설악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보기도 쉽지 않게 된다.

대신 공사장을 둘러싼 철제펜스와 도로를 오가는 공사차량, 그리고 바닷가에 우후죽순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들은 번잡한 도심지에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바닷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던 기존 상권은 고층건물에 가려져 바닷가에 있지만 바다를 조망 할 수 없어 고립감까지 느낄 정도다.

관동팔경 중 하나인 낙산사와 의상대가 인근에 있어 오랫동안 관광·휴양 명소로 사랑받아온 양양 낙산해변이 해안을 따라 4개 동의 고층 생활형 숙박시설과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서며 아름다운 광경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양양=권태명기자

서울에서 휴가차 낙산을 찾았다는 서수진(여·38·송파구 위례동)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왔던 낙산해변을 잊을 수 없어 매년 가족들과 찾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들어서는 고층건물로 예전의 아름다운 낙산의 이미지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힐링 하러 오는 곳인데 동네 아파트단지에 와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더욱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대형 건축물 한켠에는 경영난으로 영업중단한 채 폐가 수준으로 방치되고 있는 대형숙박시설들로 인한 경관 훼손도 심각하다. 1980~90년대 활황을 누리던 이들 숙박시설은 최신 숙박시설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이제는 도시미관을 해치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근 유행처럼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는 생활숙박시설도 관광 트랜드 변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게 되면 유사한 사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에서 가족들과 낙산을 찾은 박진수(41·서대문구 북아현동)씨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그래도 편의성을 따져 대형숙박시설을 찾을 수 밖에 없지만, 요즘의 낙산은 고층건물들이 무분별하게 난립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낙산 인근 한 숙박업소 관계자는 “우후죽순 들어서는 대형 숙박시설로 인해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영세숙박업소의 생계가 막막해 지고 있다”며 “80, 90년대 호황을 누리던 대형 숙박시설이 애물단지가 된 것처럼 지금 들어서고 있는 숙박시설도 또다른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낙산지구에서는 기존 숙박업소들이 최신식 숙박시설과 경쟁력에서 밀려 영업 부진과 폐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호텔과 모텔에는 ‘폐업’ 또는 ‘영업안합니다’라는 안내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교수는 “지역주민과 관광사업자, 허가를 내주는 공공기관, 학계 등 전문가집단이 함께 참여해 소통과 논의를 통해 개발 방향을 찾는다면 무분별한 개발과 지역상권이 소외되는 것은 최소화 할 수 있을 것” 이라며 “자본 논리로 일방적인 개발은 환경피해는 물론 향후 지역사회와 갈등을 빚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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