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아줌마의 오지랖, 강원도를 살리는 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조상원 강릉 주재 부국장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요.”

봉사 현장에서, 마을 사랑방에서, 골목 입구 분리수거장에서 아줌마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말이다. 누군가는 ‘오지랖’이라 말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공동체의 마지막 버팀목이자, 지금 강원도를 조용히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력이다.

강원도 18개 시군, 마을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빠짐없이 열리는 활동이 있다. 바로 독거 어르신과 지역 아동을 위한 반찬 봉사다. 매주 혹은 매월, 주민들이 반찬을 나누는 이 활동은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작은 실천이야말로 마을을 살리는 근간이 된다. 정기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강원도는 지금 인구소멸 위기와 고령화, 청년 유출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지방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위기 속에서도 지역을 살리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들은 법령이나 정책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문제의 본질을 피부로 느끼며 직접 손발로 뛰는 사람들이다. 그 중심에는 ‘아줌마’들이 있다.

이들은 문제를 ‘정책’이 아니라 ‘생활’로 받아들인다. 무언가 이상하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누군가 불편을 겪고 있다면 나서서 그 사이를 잇는다.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가 있으면 반찬을 나눠주고,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있다면 직접 병원까지 함께 간다.

대도시에선 때때로 이웃의 죽음을 몇 달이 지나서야 알아채는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 전등이 꺼졌는지, 아침에 연기가 나는지, 오늘도 대문이 열렸는지를. 이 작은 관심들이 서로를 지키는 울타리가 된다.

평창에서 근무할 당시, 여름철이면 언론에 ‘배추 한 포기 1만 원’이라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도리어 다른 풍경에 놀라곤 했다. 세상 물가가 어떻게 오르든지, 이곳에서는 김치 나눔 봉사가 열렸다. 독거 어르신을 위한 김치를 담그기 위해 배추, 무, 고춧가루, 젓갈 등 모든 재료를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기부했고, 준비된 재료에는 ‘김치를 버무릴 손’만 더해지면 됐다. 대도시에서는 사치품이 된 김치가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만들어지고 나누어졌다. 물론 그 중심에도 언제나 아줌마들이 있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그랬다. 전국적으로 자발적 봉사가 활발했던 지역은 대부분 여성 커뮤니티가 살아있는 곳이었다. 천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기부하고, 결식 우려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나르고,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이웃을 챙겼던 이들. 보통의 주부이자, 이름 없는 아줌마들이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아줌마의 역할을 사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지역을 지탱하는 힘은 오히려 그 작은 실천에서 나온다. 오랜 시간 가족을 돌보고, 이웃을 챙기며 쌓아온 경험과 관계망은 어떤 정책도 흉내낼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지역 사회를 재설계하는 주체로 조용히 나서고 있다.

강원도 곳곳의 아줌마들이 보여준 연대와 실천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의 미래 모델이다. 청년정책, 돌봄복지, 환경운동, 지역경제 회복까지. 모든 분야에서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그리고 그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바로 아줌마다.

‘아줌마의 오지랖’은 곧 강원도의 회복력이다. 그들은 행정이 닿지 못하는 틈을 채우고, 제도가 미처 챙기지 못한 사각을 메운다.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삶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의 말과 행동, 손길과 공감이야말로 지금 강원도에 필요한 진짜 자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자원을 존중하고 함께 나눌 준비를 해야 한다.

아줌마가 바꾸는 세상. 그 시작은 언제나 아주 조용한 오지랖에서 비롯된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지선 1년 앞으로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