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비상계엄’부터 ‘조기대선’까지 숨 가빴던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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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개월 대한민국 정국은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흘렀다. 12·3 비상계엄 여파는 대통령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6월3일 조기 대통령 선거까지 이어졌다. 숨가쁘게 돌아갔던 이 시기는 위기를 극복해내는 한국 민주주의 저력을 입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45년 만의 비상계엄…6시간 만에 철회=2024년 12월3일 밤 10시27분,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엄 포고령 제1호는 정치활동 금지, 언론 통제, 영장 없는 체포 등 사실상 헌법의 일시 정지를 의미했다.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즉각 반응했다. 계엄군의 국회 경내에 진입 시도까지 벌어진 가운데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에 진입했다. 12월4일 새벽1시1분,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인 중 찬성 190인으로 가결했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새벽 4시27분, 계엄 해제를 공식 발표했다. 6시간 만의 철회였다.

◇12월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인, 찬성 190인으로 가결했다. 연합뉴스

■국회, 탄핵 소추… 헌재, 전원일치 파면 결정=계엄 해제 직후 국회는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에 돌입했다. 12월7일 첫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시도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참여하지 않아 의결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이어 12월14일 열린 2차 표결에서는 재석 의원 300인 중 찬성 204인으로 가결됐다. 탄핵소추안이 통과되면서 윤 전 대통령 직무는 즉시 정지됐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소추 이후 11차례의 변론을 열었고 지난 2월25일 변론을 종결했다. 쟁점은 비상계엄 선포 정당성, 국회 봉쇄 및 침입, 중앙선관위 장악시도, 계엄포고령 위헌성, 법관 체포 및 구금 지시 등 5가지였다. 헌재는 숙고의 시간 끝에 지난 4월4일, 재판관 전원 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었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월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 등이 참여한 공조수사본부에 체포됐으나 체포 52일만에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과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석방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4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을 내렸다.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선출…대법원, 이 후보 사건 파기환송=조기 대선이 결정되면서 거대 양당은 후보 선출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4월15일 대선 경선 후보 등록을 받은 결과 이재명·김경수·김동연 후보 3파전이 됐다. 권역별 순회 경선을 거쳐 4월27일 이재명 후보가 89.77%라는 득표율을 얻으면서 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이 후보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을 병행해야 하는 등 사법리스크에도 시달렸다. 공직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 이후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5월1일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다. 선거 한 달 전이었다. 이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이 1차 공판일을 5월15일로 지정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하지만 서울고법 재판부는 결국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앤다며 첫 재판을 대선 이후인 6월18일로 연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지난 4월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경선 및 최종 후보자 선출 대회'에서 최종 후보로 확정된 뒤 김경수·김동연 후보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김문수 후보 선출…후보 교체시도 무위, 단일화 결렬=반면 국민의힘은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4월15일엔 김문수·나경원·안철수·양향자·유정복·이철우·한동훈·홍준표 등 11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이어 3차례의 경선을 거쳐 5월3일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후보가 한동훈 후보를 꺾고 당의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하지만 일주일만인 5월10일 새벽, 당 지도부가 김 후보 선출을 취소했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의 후보 교체를 시도했다.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후보의 단일화 실무협상이 성과 없이 끝난 직후였다. 이 과정은 10일 전당원 투표 부결로 무산됐고, 김 후보는 다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다.

김문수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와도 단일화 담판을 시도했지만 결국 결렬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지난 5월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후보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3 대선을 통해 다시 민주주의 사회로=지난 6개월간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초유의 격동기를 지나왔다. 그러나 비상계엄이 여야 공동 대응으로 6시간 만에 철회되고, 대통령이 헌재에 의해 파면되며, 조기 선거를 통해 헌정 질서를 회복했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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