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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어떤 임종(臨終)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죽고 싶은가.” 질문은 단순하지만, 답은 생의 총결산처럼 복잡하다. 최근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40세 이상 남성 484명, 여성 516명 등 1,000명을 상대로 지난달 25∼30일 ‘지역사회 돌봄 인식과 수요 조사’를 진행했다. ‘선호하는 임종(臨終) 장소’를 묻는 말에 응답자 48%는 자택을 선택했다. 뒤이어 종합병원(31%), 요양병원(12%), 요양원 등 요양시설(7%) 순이었다. 절반이 집에서 삶의 마지막을 맞고 싶다고 했지만 현실은 종합병원. 집이 아닌 병원에서 가족 아닌 타인의 손에 눈을 감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고령이나 질병으로 돌봄이 필요할 경우 자신을 보살필 사람으로는 남녀의 답변이 엇갈렸다. ‘배우자가 돌봐줄 것’이라는 응답이 남성은 49%인 데 비해 여성은 22%에 불과했다. 통계 속 숫자보다 더 큰 울림은 또 다른 질문에서 찾아진다. 즉,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 남성은 단연 아내를, 여성은 요양보호사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서로 다른 이 기대의 간극이 우리 사회의 돌봄 구조를 새삼스럽게 드러낸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삶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울타리였다. 병들고 노쇠한 부모를 돌보는 것은 자식의 도리였고, 배우자의 곁을 지키는 것은 사랑의 완성이었다. 그러나 고령화와 핵가족화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그 믿음은 점점 균열을 보이고 있다. ‘수어지교(水魚之交)’라 해 물과 물고기처럼 뗄 수 없는 관계로 여겨졌던 부부조차 이제는 생의 말미에 서로에게 기대기보다 거리를 둔다. 남성은 아내에게 의지하지만, 여성은 자신을 돌봐줄 실질적 손길을 찾는다. 돌봄의 사각지대는 갈수록 넓어진다. ‘나 혼자 산다’는 말이 더는 예외가 아닌 시대다. 그 말의 끝자락엔 ‘나 혼자 죽는다’는 문장이 따라온다. ▼삶의 끝에서 ‘혼자’라는 두 글자는 무겁다. 사랑도 책임도 결국 유효기간이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이 조사 결과는 단순한 여론조사를 넘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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