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은 유혹처럼 다가오지만, 그 본질은 날이 선 칼날이다. 손을 대는 순간 피를 보고, 높이 들수록 스스로를 찌른다. 과시하면 할수록 위험은 커지고, 함부로 휘두르면 반드시 되치기를 당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운명이 늘 그러했고 치욕이 예정돼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누구도 멀쩡한 모습으로 임기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기 초의 환호는 임기 말의 원망으로 바뀌고, 기대는 실망으로, 신뢰는 분노로 돌아선다. 그 굴레에서 자유로운 이는 없다. 시대는 빨라졌고, 국민의 눈높이는 더 높아졌다. 그러니 정치 지도자의 책임은 더욱 막중해졌다. 지금 대한민국은 다시 전운으로 가득하다. 정치권은 6월3일 대선을 앞두고 또 한 번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는 지난 27일 민주당의 21대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국민의 힘은 후보 경선 중이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피로는 극에 달했고, 사회는 극심하게 양분되었으며, 정치에 대한 불신은 바닥을 쳤다. 이런 상태에서 누가 되든 반쪽짜리 대통령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이념을 넘어 민심을 껴안는 정치는 실종됐다.
예전처럼 ‘정치 9단’ 따위는 의미 없다. 밀실에서 움직이던 정치는 이제 광장에 끌려 나왔다. 국민은 더 이상 조용히 기다리지 않는다. 어떤 말도, 어떤 정책도 진정성이 없으면 통하지 않는다. 구호는 누구나 외칠 수 있다. ‘서민을 위하겠다’,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말은 진부하다. 중요한 건 누가 말하느냐다. 진정성을 꿰뚫어 보는 국민 앞에서 꾸며낸 자세는 즉시 간파된다. 민심은 마치 시장의 소비자처럼 냉정하고 잔인하다. 제3지대의 신기루는 이번에도 나타날 것인가. 역대 대선 1년 전이면 어김없이 ‘제3의 인물’이 등장했다. 정몽준(2002년), 고건(2007년), 안철수(2012년), 반기문(2017년)이 등장해 지지율 1위에 오르며 대선판을 흔들었다. 그들은 한때 희망처럼 보였지만 끝내 무대 뒤로 퇴장했다. 민심을 업은 듯 보였으나 민심은 쉽게 등을 돌렸다. 교훈은 분명하다. 민심은 포획 대상이 아니라 흐름이다. 그 물길을 억지로 틀려 하면 되레 휩쓸릴 뿐이다. 문재인 정부도 그 함정을 피하지 못했다.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국민의 정권 교체 열망을 정확히 짚고 권좌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부동산 폭등, 청년 실업, 성장 둔화 등 연이은 실정에 민심은 빠르게 돌아섰다. 지지층마저 등을 돌렸고, 결국 ‘촛불 대통령’은 임기 말 ‘무능의 상징’으로 몰렸다. 어느 정권이든 민심을 놓치는 순간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은 국민이 공감하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명암을 어떻게든 이어가려 하는 것 같다. 국민의힘은 개혁을 말하지만 여전히 과거에 발목 잡힌 모습이다. 둘 다 국민의 분열된 정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지지층만 바라보며 선거를 치르려 한다. 특정 세대, 특정 계층만을 위한 정치로는 대한민국의 이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정치는 더 이상 말의 예술이 아니다. 행동의 결과가 말보다 앞선다. 후보들은 연일 메시지를 쏟아내고, 정책을 내세우며 민심을 얻으려 안간힘이다. 그러나 국민은 이제 말에 속지 않는다. 과거의 언행, 태도가 후보의 얼굴이다. 말이 아닌 기록이 평가의 기준이다. 대선 후보가 진심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먼저 낮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우면 자신과 당을 망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 ‘정의를 위해’ 대통령이 되면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오만이다. 후보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명확한 비전과 목표 및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자존심, 고집, 오만. 이 세 가지는 대선 후보의 무덤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진정한 대통령은 이념이 아니라 민심 위에 서야 한다. 그런 지도자라면 누가 대통령이 된들 무슨 상관인가. 보수면 어떻고 진보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