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확대경]군자(君子) 화이부동(和而不同)

최태영 횡성부군수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는 원주-횡성 통합론은 ‘대도시 중심 발전’이라는 오래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구상이다. 이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도시의 팽창과 권역 확장을 당연시하는 ‘제국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시지역이 커진다고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은 아니며, 도시 외곽과 농촌이 소외되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화될 수 있다.

이른바 ‘제국의 논리’는 행정․경제․인구 중심지를 더 크게 만들어야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다는 주장을 한다. 겉으로는 행정효율과 공동발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자치와 균형발전이라는 대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통합은 단순히 행정구역을 합치는 문제를 넘어, 공동체의 정체성과 발전 방향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일이다.

통합론자들은 통합 후 원주가 ‘특례시’로 지정되면 더 많은 예산과 권한이 내려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실체없는 기대에 불과하다. 특례시가 되면 예산과 권한은 대부분 중심 시지역에 집중되며, 통합된 군지역은 대규모 행정 체계 안에서 목소리를 잃고 뒤로 밀리게 된다. 농촌이 살아야 도시도 지속가능하다. 시군이 함께 살아가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합이 아니라 군지역의 독립성과 기능강화가 답이다. 농촌이 망가지면 도시는 고립된 섬이 될 뿐이다.

또한 통합은 강원특별자치도의 자치분권 확대기조와 상충하며, 인근 홍천과 평창의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 특히 광역 단위에서 노력하고 있는 재정분권과 특례 권한도 일부의 도시중심 행정에 흡수될 위험이 크다.

원주와 횡성은 이미 생활․경제권을 공유하며 협력하고 있다. 횡성의 한우, 더덕 등 명품 농축산물은 원주의 유통망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원주의 의료, 교육 인프라는 횡성 군민의 삶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기능적 연계, 정책적 협력, 공동 광역사업을 통해 얼마든지 강화할 수 있다. 행정구역을 합치지 않아도 실질적 통합은 가능하다.

횡성은 자치권과 정체성을 지켜내며,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8대 명품 육성을 통한 농업 고부가가치화, 이모빌리티 실증단지를 중심으로 한 미래산업 육성, 상수원보호구역 규제 해제노력을 통한 개발 가능 지역 확대, 의료 폐기물 설치 반대 등 군민과 함께하는 자치를 실천하고 있다. 민선 8기 ‘군민이 부자되는 희망횡성․행복횡성’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통합은 도시적 패권 논리에 맞춘 구시대적 해법일 뿐이다. 강원특별자치도민 전체가 만족하는 자치권한 확대를 위해서는 획일적 통합이 아닌, 지역 맞춤형 자치 강화와 시군 협력 기반 강화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 우선 원주와 횡성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수원보호구역 해제와 같은 실천과제부터 바로 해결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전국 지자체와 협력하여 현재의 2할 자치, 3할 자치 극복을 위해 중앙정부에 대해 일치된 목소리를 내야한다.

공자(孔子)는 ‘군자(君子)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小人)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하였다. 보통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고 윤리적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하지만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和)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不同),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同) 공존하지 못한다(不和).’고 읽는 것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옛글에서 말하는 관용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화합의 정신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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