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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포용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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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고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머문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과 겸허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의 진가를 물의 모습에서 찾는 이유다. 큰 그릇일수록 많은 것을 담고, 깊은 강일수록 소리 없이 흐른다. 포용의 리더십은 그와 같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타인을 품고, 옳고 그름을 가르기보다 다름을 끌어안는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는 이를 배제한다. 서슬 퍼런 감정의 칼날이 논리보다 앞서고, 포용은 타협의 다른 이름으로 폄하되면서 공동체는 방향을 잃는다. ▼고사성어에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말이 있다. 흐름의 출처를 가리지 않고, 물줄기의 성질을 탓하지 않는 큰 품을 뜻한다. 포용의 리더십이란 결국 내 편, 네 편의 논리를 지우고, 낯선 흐름까지도 껴안을 수 있는 넉넉함을 말한다. 이 시대 진짜 지도자는 내 편을 지키고. 세를 늘리는 자가 아니라, 남으로 규정한 이들을 포기하지 않는 자다. ▼문제는 모두가 자신을 바다라 부르지만, 실상은 개울만도 못한 도량을 지녔다는 데 있다. 조그마한 비판에도 곧장 반격한다. 바다처럼 낮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태도, 가느다란 물줄기까지도 널리 받아들인다는 ‘세류광납(細流廣納)’의 정치가 절실한 이유다. 큰 정치란 곧 ‘견딜 수 있는 정치’다. 그릇의 크기가 간장 종지 정도라면 리더는 결국 고립된다. ▼포용이란 결국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용기다. 그것은 언제나 손해를 각오하는 이에게만 허락된다. 고집과 논리로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 반짝 인기와 기세로 다스리는 시대는 오래가지 못한다. 반면 작은 차이를 감싸안는 정치는 더디지만 멀리 간다. 바다는 스스로를 비워 만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크고 깊다. 포용의 리더십이란 그런 것이다. 스스로를 덜어내는 순간, 비로소 많은 것을 품게 된다. 지금 이 시대, 진짜 강한 리더는 싸우는 자가 아니라 수용하고 포용하는 자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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