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책]송금호 장편소설 ‘파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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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수에 담긴 국가적 트라우마, 인간 내면의 풍경
- 전상국·오정희와는 다른 결의 파로호를 만난다

기자출신 소설가 송금호의 ‘파로호’를 펼치면, 마치 오래도록 땅속에 묻혀 있던 시간을 파헤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일제강점기 강제 노역으로 시작해 한국전쟁의 포화 속으로 이어지는 이 장편소설은, 파로호라는 인공호수에 잠긴 민족의 상흔을 낱낱이 끌어올린다. 단순히 비극의 나열을 넘어, 남과 북, 친일과 반일, 좌와 우로 찢긴 우리 현대사의 뿌리를 더듬는다. 작가는 특히 ‘지도교수 양무선 박사’라는 인물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 목숨을 건 집요함을 그린다. 그의 곁에서 준호와 나영, 두 젊은이는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과 조우하며 “이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설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 개인과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처 입은 역사와 화해하려는 여정을 담는다. 흥미로운 것은, 파로호라는 호수가 송금호 한 사람만의 문학적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전상국, 오정희 등의 작가에 의해 동명의 중·단편 소설로 발표됐다. 송금호가 소설에서 국가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직시했다면, 전상국은 그 비극을 기이한 판타지적 요소로 풀어내어 호수 속 죽음을 낚는 한 편의 기이담으로 승화시켰다. 반면 오정희는 파로호를 내면의 풍경으로 삼으며, 텅 비어 있지만 가득 찬 풍경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파로호’를 읽는 일은 단순히 한 시대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다. 한 호수가 품은 서로 다른 시간과 서로 다른 인간 군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는 이 호수 위에서, 파로호가 아닌 대붕호라 불리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구만리를 날았던 새의 꿈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송금호가 말한 것처럼, 이 호수의 침묵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야 겨우, 그 침묵의 울림을 듣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리잼 刊. 412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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