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국가 재난 산불에 책임은 자치단체가 져야 하나

헬기 배치 모든 비용, 도와 지자체가 부담
산불은 국민 생명·재산·국토 안전과 직결
최신 감시 장비 구축 등에 정부 지원 있어야

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63%가 산림이지만 강원특별자치도는 무려 81%에 달하는 광대한 산림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지형적 특성은 강원도를 ‘산림수도’로 규정 짓는 자부심의 근원이자 동시에 해마다 반복되는 ‘재난’의 진앙지로 만들고 있다. 봄철만 되면 강풍과 건조한 기후, 그리고 사소한 부주의가 맞물려 도 전역은 산불 비상 체제에 돌입한다. 그러나 해마다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근본적인 대응 체계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핵심은 명확하다. 국가적 재난에 대한 책무를 지방자치단체가 전적으로 감당하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다.

올해 강원도가 산불 진화 헬기 임차를 위해 편성한 예산은 79억원으로 전액 지방비다. 산불 발생 시 즉각 대응이 가능하도록 춘천·홍천, 원주·횡성 등 10개 권역으로 나눠 헬기를 배치했지만 이 모든 비용을 재정자립도 29.4%에 불과한 도와 기초자치단체들이 도맡아야 하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산불은 단순한 지방행정의 일부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 나아가 국토의 안전과도 직결된 국가적 재난이다.

하지만 산림청은 산불 진화가 ‘지자체 고유 사무’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현행 구조는 지방정부에 국가 재난의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다. 현실적으로 산불은 지역을 넘어선 피해를 유발한다. 대표적으로 2022년 동해안 대형산불은 이재민 600여명을 발생시켰고 전국에서 진화 인력과 헬기가 투입돼야 했다. 또한 최근에는 인제에서 출동한 임차헬기가 경상권 산불 진화 중 추락해 기장이 순직하는 비극도 벌어졌다. 지자체 소속 헬기가 타 지역 재난 대응에 투입되고, 그 위험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장비 유지와 인력 운영, 보험 가입 등 모든 비용을 지방예산에서 부담하라는 구조는 재고돼야 한다. 문제는 헬기 수급만이 아니다. 강릉산불 당시 초대형 헬기만이 강풍을 뚫고 출동할 수 있었지만 강원도에는 단 1대만이 배치돼 있다. 이마저도 지역 간 진화 소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초대형 헬기 한 대 도입에 550억원 이상이 필요하지만, 국가는 적극적 지원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결국 도는 수년째 헬기 증설을 요구하면서도 예산 압박에 발이 묶인 상황이다. 강원도는 1997년 이후 헬기 임차 비중을 점차 확대해 왔고, 현재 전국 배치 헬기 119대 중 78대(66%)가 지자체 임차분이다. 이는 지방이 사실상 산불 대응의 절대다수를 맡고 있음을 방증한다.

정부는 ‘산불 진화는 지자체 업무’라는 기계적인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의 구조는 책임은 지자체에, 위기 대응의 한계는 국민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산불은 점차 대형화, 장기화되고 있다. 기후 변화와 강풍의 영향으로 진화 조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자체의 예산과 인력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다. 초대형 헬기, 최신 감시 장비, 통합 지휘 체계 등 고도화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중앙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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