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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강원도]① 박수근 1934년 作 ‘겨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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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풍경(1934년 作)’ 종이에 수채. 개인소장. ⓒ박수근연구소

올해로 타계 60주기를 맞는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 화백.

그의 나이 스물 되던 해에 완성한 ‘겨울풍경(1934년· 37×58cm)’은 단순히 농촌의 겨울 모습을 담아낸 풍경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박화백의 작품 중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는 작가의 고향인 양구의 장소성과 기억, 그리고 어린 시절 그가 보고 느낀 자연과 삶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박화백은 목탄을 손에 쥐고 양구의 산과 들을 스케치하던 청년이었다. 눈 덮인 들판과 앙상한 나무, 멀리 보이는 산의 굴곡은 그가 매일 마주한 고향의 풍경이자, ‘겨울풍경’의 배경이기도 했다. 절제된 색감과 담백한 구성은 양구의 소박한 자연을 바라보던 박화백 특유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1930년대 양구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의 색채가 짙은 곳이었다. 사람들은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빨래터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삶의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이었다. 박화백은 이런 생활상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접했고, ‘겨울풍경’에도 고향 사람들의 순박한 일상과 겨울나기의 풍습이 은근히 배어 있다. 초가집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눈, 마당 한켠의 장작 더미와 김장 독 같은 소재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양구라는 공간에 쌓인 시간과 기억의 흔적이다. 화면 오른 쪽에 자리한 나목(裸木·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의 모습도 이채롭게 다가온다.

◇박수근 화백(1914~1965)

박화백 작품 특유의 색감 또한 양구의 자연에서 길어 올린 결과물이다. 눈 덮인 설원, 황토 흙, 화강암 바위에서 길러진 차분하고 담백한 색조는 작품 속에서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인공의 화려함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삶의 결을 담아내려 했던 박수근의 그림에 대한 철학은, 양구의 겨울 풍광 속에 투영되어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구도 또한 주목할 지점이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그는, 양구의 산과 들을 걸으며 터득한 시선으로 화면을 구성했다. 멀리 보이는 산과 하늘, 가까이 자리한 들판과 마을은 양구에서 보고 익힌 풍경의 자연스러운 배치이며, 양구 농촌의 시각적 감각이 그대로 스며든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꾸밈없이 소박한 구성은 그의 예술관이자, 고향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박수근의 예술적 뿌리는 결국 양구였다. 비록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그의 작품 속 정서는 언제나 고향을 향해 있었다. ‘겨울풍경’은 단순한 수채화 한 점을 넘어, 박수근 예술 세계의 출발점이자, 양구라는 공간이 길러낸 한 화가의 예술혼이 스며든 결정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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