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보=의과대학 정원 증원과 의료 개혁을 둘러싼 의정(醫政) 갈등이 2년째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은 6일 내년도 의과대학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인 3천58명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는 전국 의대 학장들이 요구했던 것과 같은 수준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당정 협의를 한 뒤 의료인력 수급 등 현안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은 의대의 교육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의대 학장들의 건의 내용이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앞서 전국 40개 의과대학 학장들이 모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KAMC)는 지난달 17일 교육부에 '2026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2024년도와 같은 3천58명으로 조정하고 2027년부터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의 결정을 반영해 모집인원을 정하자'고 건의했다. 이주호 부총리도 조건부로 수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며 급물살을 탔다.
권 원내대표는 "정부와 의료계는 이 건의문 내용을 적극 검토하여 의대 교육 체계를 바로잡아 나가길 바란다"며 "우선 학생들 위주로 판단하고, 2027년부터는 의료인력추계위원회에서 모집인원을 결정하는 게 타당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학생을 둔 부모의 심정으로 의대 정상화가 조속히 이뤄져서 학생들도 학업에 매진하고, 학부모들도 학생으로 인해 속 끓는 일이 없도록 의대 정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지금은 정부의 감정이나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고, 어떻게든 학생들을 빨리 학교에 복귀시켜서 의료교육을 정상화하는 것이 학생들이나 학부모, 의대에 좋고 국민들에게 필요한 일"이라며 "그래서 저희도 입장을 양보하고 그 공을 의대생들에게 넘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인 3천58명으로 되돌리는 방안에 무게가 실리면서 1년 넘게 지속된 의정 갈등 사태가 분수령을 맞고 있다.
의대 학장들을 비롯한 의료계 일부 단체들이 정부에 기존 정원으로의 회귀를 요구한 데 이어 대학 총장들도 뜻을 같이하자 교육부는 물론 보건복지부도 공감의 뜻과 함께 "정부 내에서 충분히 협의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다.
내년 정원 합의가 교착상태인 의정 갈등의 출구가 될지 주목되는 가운데 여전히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오고 있지 않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사태 해결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 부총리는 지난달 24일 의대 학장들을 만나 의대 교육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면서 의대생 복귀를 전제로 정원 원상 복구를 검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대한의학회, 국립대학병원장협의회 등 한국의학교육협의회(의교협) 소속 8개 의료단체와 의료계 원로들도 내년 정원 3천58명 재설정, 2027년 이후 의대 정원은 추계위원회에서 결정, 의학교육 지원책 구체화 등을 요구하며 학장들의 요구에 힘을 실었다.

3월 개강 후에도 의대생 강의실이 텅 빈 상황이 지속된 가운데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 총장들도 정원 3천58명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장들은 그간 의대 학장들과 달리 대체로 증원을 원하는 입장이었던 데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의료인력 추계위 관련 법안엔 추계위를 통한 내년 정원 논의가 불가능할 경우 총장이 정원을 결정할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에 총장들의 이 같은 합의는 상당한 무게를 지닌다.
이날 정부가 긴급회의를 마련한 것도 총장들까지 증원 복구 목소리를 내면서 3천58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간 교육부와는 온도 차를 보이며 '내년 정원 원점 검토'의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보건복지부도 이날은 "각 대학 총장님의 마음에 공감한다. 당사자인 의대생들의 입장을 감안해 정부 내에서 충분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 1년간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며 늘린 정원을 되돌리는 것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예상되는 데다 정부가 후퇴해도 정작 사태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의대생이나 전공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는 점은 변수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대생 등이 필수의료 패키지 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타협될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증원 0명'을 공식 요구했던 의료계 단체들도 정부의 움직임을 환영하면서도 의대생이나 전공의의 수용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
이진우 의교협 회장은 "복지부도 진일보한 반응을 냈으니 이제 논의가 좀 될 것"이라며 "이번 주중에 결정이 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정원 3천58명) 외엔 현실적인 방법이 없는데 학생들이 돌아갈지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KAMC 관계자인 한 의대 학장도 "복지부가 총장들 입장에 공감을 표한 것은 긍정적"이라며 "보건의료인력 숫자를 만드는 복지부가 그런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선 환영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결정이 "학생 복귀와 교육 정상화의 단초는 될 것 같다"며 "학생들이 정원 외에 다른 요구사항이 있지만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일단 이것만이라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서울 지역 한 의대생은 "정부가 한발 물러선 셈이니 그 부분에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총장들 입장에선 교육 현장에 부담이 크다는 것을 처음 인식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필수의료 패키지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못 하고 문제를 더 키우는 것만 잠시 멈춘 상태에 불과하다"며 복학 가능성에 대해선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과 더불어 지역의료 강화,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 정부가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겠다며 지난해 2월 발표한 정책 패키지인 '필수의료 패키지' 전반에 대해 반대해 왔다.
한 사직 전공의도 "만시지탄이라는 말이 정확하다"며 "정부에서 백지수표를 내밀어도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풀려면 대표성 있는 단체인 대한의사협회가 도장을 찍어야 한다"며 "지금 전공의, 의대생 입장은 지난 1년간 본 것 중 가장 강경하다. 정부와 의협 간 공식적인 합의 없이 정부가 내년도 정원 동결을 발표한다고 해서 전공의와 의대생이 자발적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고 전했다.
2020년 의정 갈등 국면에서 나온 9·4 의정 합의 때처럼 정부와 의협이 공식 합의를 통해 전공의와 의대생이 어떻게 돌아갈지 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의협이 화답할지도 아직은 불확실하다.
의협은 의교협 소속 단체들이 정부에 3천58명 동결을 요구할 때 동참하지 않았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우리는 교육부에 24·25학번을 어떻게 잘 교육할지 계획부터 내놓으라고 한 것인데 정원을 얘기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며 "우리는 현재로서는 정원에 대해선 딱히 코멘트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한편,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사단체들에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고 구체적 내용 제시 없이 무조건 백지화,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의료 전문가로서 현장에 꼭 필요한,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박 차관은 휴학 종용 등 의대 수업 방해 행위에는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임을 강조했다.
정부는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입법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행위 중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한 반의사불벌 특례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박 차관은 "의료인들은 필수의료 기피의 가장 주된 요인으로 사법 리스크를 지목한다"며 "그간 의개특위에서도 많이 논의했고, 정부도 환자와 의료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안전망 강화 입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사고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반영한 제도개선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환자와 의료인 모두가 신뢰와 공감을 토대로 의료 분쟁을 해결할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