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 출신 소설가 전정희의 장편소설 ‘가시나무 꽃이 필 때’는 한 가족의 비극적 운명을 동해의 바다와 함께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가족사에 머무르지 않고 동해라는 공간이 품은 시간의 무게, 바다와 함께 흘러간 기억, 그리고 그 바다를 마주하며 상처를 보듬는 과정을 촘촘하게 직조해 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중심에는 강은하라는 인물이 있다. 한때 동해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그녀는 현재 서울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어느 날 과거를 소환하는 한 통의 통지서를 받는다. 어린 시절 살았던 동해의 집터가 골프장 부지로 개발되면서 땅의 처분을 두고 가족들과 다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동의를 구하기 위해 찾은 고향에서 은하는 잊고 지냈던 가족사와 함께 이곳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새기게 된다. 소설 속에서 동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가족의 상처와 화해를 증명하는 공간으로 역할한다. 은하는 바닷가를 걸으며 과거를 회상하고, 묵호항에서 떠오르는 기억들 속에서 상처를 직면한다. 바다는 그녀에게 자유이자 속박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존재로 남아 있다.
소설은 강은하와 그녀의 가족이 동해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때 한학자였던 은하의 아버지 강석주는 동해의 작은 마을에서 야학을 운영하며 많은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지만, 큰아들 강석훈과 그의 아내 황복자의 탐욕으로 인해 재산을 빼앗기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다. 강석훈은 처음에는 선량한 인물이었지만, 황복자의 욕심과 함께 점차 변질되어 가족을 배신하고 동생들과의 인연도 끊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흩어지고 동해에서 함께 보냈던 유년의 기억도 점점 아픔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강석훈 역시 모든 것을 잃고 결국 가족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은하는 과거의 상처를 쉽게 용서할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동해에 다시 발을 디디며 변화의 가능성을 고민한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상처는 치유될 수 있을까.
동해는 은하의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을 품고 있으며, 그녀의 감정 변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특히 묵호항은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은하는 가족 문제로 고민하며 묵호항을 거닐고, 한때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어묵과 붕어빵을 사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차갑게 불어오는 겨울바람 속에서도 따뜻했던 순간이 존재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 장면은 동해가 단순히 아픈 기억의 장소가 아니라, 여전히 따뜻한 온기를 간직한 곳임을 보여준다.
또한 논골담길과 청수골의 바다 역시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 논골담길은 과거로 향하는 길목이며, 은하는 이곳을 지나며 가족의 흔적을 되새긴다. 청수골 바다는 어린 시절 은하에게는 놀이터였지만, 한때 동생이 물에 빠지는 사고를 겪으며 두려움의 공간으로도 변했다. 이처럼 바다는 자유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이며, 가족의 희망과 비극이 교차하는 공간이 된다.
소설 속에서 동해의 바다는 단순한 자연적 배경이 아니라 가족의 운명과 닮아 있다. 잔잔한 날도 있지만, 한순간 모든 것을 삼켜버릴 만큼 거칠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엔 다시 평온을 되찾듯 은하 역시 가족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소설의 제목 ‘가시나무 꽃이 필 때’는 강한 상징성을 가진다. 가시나무는 상처와 고통을 의미하지만, 꽃이 핀다는 것은 그 상처를 딛고 새로운 희망을 찾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가족 간의 갈등이 깊어졌지만, 은하는 결국 동해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이곳에서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바다가 늘 그래 왔듯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거를 잊을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을 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소설의 마지막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