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일반

[출향인, 이사람] 탄광촌 출신 흙수저에서 국산기술 선구자로···세계 무대 누비는 강국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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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전산업의 전설, 강국창 인천경영자총협회장·동국성신(주) 회장

강국창 동국성신(주) 회장이 13일 집무실에서 유병욱 강원일보 서울본부장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박승선기자

"어떻게 하면 저도 그렇게 성공할 수 있나요?"

여든이 넘은 노(老)강사가 연단에 서자 한 청년이 묻는다.

"미안한 말인데요, 저는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노력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성공 비결에 대해 시원한 답을 드릴 수 없지만 어떻게 최선을 다해왔는지 말씀을 해 드릴 수는 있어요"

그리고 덧붙인다.

"저는 탄광촌 출신에 돈도 빽도 없는 뼛속까지 흙수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를 흙수저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고, 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연마'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흙수저가 빛날 수 있게 됐는지 연금의 비결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태백 출신으로 가전 부품의 '국내 최초' 기술 개발 신화를 써 온 강국창 인천경영자총협회장의 이야기다. 여든이 넘은 나이, 여전히 작업복을 입고 현장을 누비고 있는 강 회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유병욱 서울본부장

■ '국내 최초 기술 개발' 신화의 시작

"회장님, 지금 회사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지금은 국내 4개 사업장, 해외 4개국 5개 공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의 경영자인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처음 창업한 회사가 최고 정점을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졸업하고 당시 4대 재벌 중 하나였던 동신화학에 취직했어요. 동신화학이 부도난 다음에는 동남샤프에 스카웃 돼 기술개발부장까지 했지요. 이후 홀로 나와 창업을 했는데 소위 '대박'을 쳤습니다"

당시만 해도 냉장고나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만 해 판매하는 일이 많았다. 부품의 국산화를 이루면 훨씬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직접 개술 개발에 뛰어 하나 둘 국산 제품을 만들어냈다. 가전 부품의 '국내 최초 기술 개발' 신화의 시작이었다.

수년간의 노력끝에 직원 400~500명을 거느린 회사의 사장으로 성장했지만 실패는 순식간이었다. '젊은 청년 사업가'로 불리던 그가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받아 선거 출마로 잠시 회사를 비운 사이 내부 회계담당자의 무분별한 어음 발행으로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 여기저기 돈을 끌어 모았지만 부도를 막지는 못했어요. 망한 후에는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절망에 젖어 살았지요. 나중에는 정말 갈 곳이 없어서 금식기도원에 갔는데 온 마음을 다 쏟아 기도를 하고 나니 어쩐지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기더군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산을 내려와 그 때부터 재기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8년 5월21일 인천 공장 준공식 테이프컷팅식

■ 글로벌 강소기업의 경영자로

일단 예전 거래처 문을 두드렸다. 그의 회사가 부도난 사이 회사에 몸담고 있던 기술자들은 이미 다른 회사로 뿔뿔이 흩어져 시장 구조가 과거와 사뭇 달라진 상황이었다.

"가족이 있으니 한번만 도와달라"는 말에 거래처 임원들은 "당신이 개발한 기술인데 돈을 달라면 못 줘도 일을 달라면 줘야하지 않겠느냐"며 손을 내밀었다. 다시 공장 차릴 돈은 당시 필름 회사에서 일했던 친구에게 빌렸다. 고비의 순간, 도움을 준 그 친구의 이름은 강 회장이 현재 운영중인 회사명 동국성신(주)에 아직도 녹아있다.

"그 친구 이름이 '동춘'인데 그 친구 이름의 '동'자와 내 이름의 '국'자를 따서 동국 전자를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마음 깊이 고마움을 갖고 있는 친구입니다"

◇2022년 중국 웨이하이 공장 입주행사

그렇게 일어선 그는 삼성과 LG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해외 유수의 기업과 협업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자로 올라섰다.

그가 경영하고 있는 동국성신(주)는 냉장고 도어용 가스켓(자석으로 냉장고 문을 닫히게 하는 부품)을 비롯해 냉장고 성에방지용 히터와 세탁기 공기방울펌프, 전기밥솥 온도조절기, 비데용 보온시트 등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핵심부품 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그가 직접개발에 참여한 '국내 최초' 기술이다.

대체불가한 기술 덕분에 협력관계에 있는 대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할 때마다 해외 공장도 하나 둘 늘었다. 현재 국내 4개 사업장, 해외 4개국에 5개 공장을 가동중이다.

강국창 (주)동국성신 회장이 생산시설 현장을 살피고 있다. 박승선기자

■ 탄광촌 소년, 개발자·경영자로 날다

강 회장의 고향은 까마득한 탄광촌이다. 7남2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탄광 산업이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을 시기, 아버지와 형을 따라 탄광에 취직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버지는 이미 석탄공사에서 일하고 계셨고, 제 위로 형님이 탄광, 누님 내외도 탄광. 다음은 제 차례인데 태백공고 광산과에 재학중이었으니까 꼼짝없이 저도 탄광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탄광에서 일할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학교였으니까요. 정해져 있는 운명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강국창 회장의 연세대 재학시절

9남매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버지는 가불을 받아 학비를 댔다. 그러니 인문계 학교에 가겠다고 말할 형편은 아니었다.

그에게 기회를 준 건 지역의 탄광 기업이었다. 강원산업은 태백공고 학생 중 공대에 진학하는 학생에게 학비와 일부 생활비까지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 때부터 벽장에 작은 꼬마전구를 켜놓고 밤새워 공부했다. 그리고 2년 후, 마을 어귀에는 '축 합격! 강국창, 연세대 전기공학과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 창의적 사고와 '진인사대천명'

"제가 좋아하는 좌우명이 있어요. 아이슈타인이 한 말인데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더 좋아질 거라고 믿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상이다'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어제와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야 발전한다는 것인데 결국 그건 창의적 사고 없이는 불가능하지요"

또 하나는 진인사대천명. 늘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다는 이미 잘 알려진 격언이다.

"인생에 항상 좋은일만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역경도 있고, 시련도 있고. 그럴 때마다 더 좋은 일이 있게 하려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금방 툭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지요"

인천에 정착해 기업가로 활동하다 보니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생겼다. 강 회장은 저출산 극복을 위한 '재단법인 인구감소대책 국민운동본부'를 설립, 활발하게 활동중이다.

"나는 원래 '공돌이'지만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요. 걱정만 하면 뭐합니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작은 일이라도 행동하면서 해결책을 찾아야지요"

주어진 운명이 싫어 떠나온 고향이지만 애정만큼은 여전하다. 지금도 정기적인 후원과 함께 기부도 아끼지 않고 있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저를 '강원도'로 불렀어요, 하하. 강원도학우회도 처음 조직하고, 제 나름대로 고향을 기억하고, 사랑하려고 애썼습니다"

올해 여든 셋이 된 강 회장은 지금도 '원어민 전화 영어' 공부를 위해 매일 아침6시10분이면 책상 앞에 앉는다. 그리고 평생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작업복을 입고 출근해 현장을 누빈다.

2019년 펴낸 자서전 '흙수저도 금수저가 될 수 있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인생을 연금하고 살아간다. 누구나 반짝반짝 빛나는 금이 만들어지길 꿈꾸지만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금이 만들어 지지 않았다고 해서 살아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구석구석 갈고 닦고, 때때로 부딪히고, 깨지기도 하다보면 어느새 갈아 엎어진 포도밭처럼 각자 마음밭에 심긴 은사가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 각자의 밭에서 빛나는 열매를 맺는 것, 그것이 우리 인생을 연금하면서 얻는 진정한 성공일 것이다"

정리=원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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