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중에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다. 사각사각, 바스락 바스락... 무슨 소리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내의 숨소리마저 끊긴 이 새벽에 들리는 낯선 소리에 선잠을 깬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소리의 진원지를 찾으려고 의식의 쳇바퀴를 굴리기 시작한다.
어디서 나는 소린가. 마침내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그것은 함석지붕 처마 밑에 숨어든 참새들이 새벽 나들이를 준비하는 소리였다. 지난해 봄 귀촌한 산방의 하루는 이렇게 참새 소리로 서막이 오른다. 처마 밑에 서식처를 잡고 들락거리는 녀석들이 신기하고 좋지만 한 가지 못마땅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녀석들이 흘리는 좁쌀 크기만 한 하얀 배설물이었다. 아내는 툇마루에 수시로 떨어지는 배설물이 마냥 못마땅한가 보다. “여보! 저것 좀 어떻게 해 봐. 저 구멍을 막든지...” 그때마다 나는 “네에, 알았어요.” 건성으로 대답하곤 하였다. 새가 있는 아침이 좋은 나로서는 차마 처마 밑 저들의 안식처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된 아내의 성화에 짐짓 몇 군데를 틀어막는 척하고 나서 아내 몰래 집 뒤란 처마 밑에 페트병을 매달고 그 속에 호박씨 등을 넣어주었다.
많은 새들 중 유독 참새가 사람들과 가까이에서 사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까치 등 천적들이 싫어하는 민가를 찾아 사람 곁에 사는 게 안전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또 마을 주변에는 둥지를 틀 장소가 많고 특히, 처마 밑이 서식하기엔 안성맞춤이기에 그럴 것이다. 참새와 같이 살면서 그동안 녀석에 대한 나의 부정적이었던 편견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알고 보니 참새처럼 우리 인간에게 유익한 새도 드물다. 참새는 자연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씨앗들을 먹고 배설물을 다른 곳에 퍼뜨려 그 지역에 새로운 식물의 종들이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벌레를 잡아먹어 해충을 방제하는 역할도 한다. 그러니 가을 들녘에서 벼 나락 좀 까먹는다 해서 너무 나무랄 일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조류 중 참새처럼 작아서 예쁜 새가 또 있을까... 녀석들은 참 바쁘게 산다. 매일매일 짹짹짹 신나게 노래하고 조잘조잘 얘기를 나누는 참새야말로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현실주의자이다. 가끔은 들판에 서 있는 험상궂은 허수아비에 놀라기는 하지만, 나뭇가지가 아니어도 들풀 더미만 있으면 쪼르르 내려앉아 노래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기 주먹 만한 몸 하나가 전부인데 참 즐겁게들 살아간다. 문득, 이 추운 겨울날 참새들은 무얼 먹고 살까. 마당 한편에 좁쌀을 내어다 놓아보지만 들냥이가 먼저 와서 해코지하고 간다. 어쩌다 메마른 덤불 숲속에 모여있는 걸 보면 아마 풀씨를 까먹는 것 같다.
이 겨울, 산촌의 시골집 마당에 적막이 우수처럼 내려앉는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고즈넉한 산방에 친구처럼 드나드는 참새들이 있어 내겐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새와 인간의 공존-어느새 칠 학년 오 반이 된 나는 이곳에서 날마다 참새와 공존하며 그의 부지런함을 배워가고 있는 만년 초등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