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2일 오후 2시45분. 화천체육관 앞 북한강 수면 위로 시신 일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정체불명의 시신은 현역 육군 장교 양광준이 벌인 참극의 결말이었다.
탄탄대로를 걷던 엘리트 중령 양광준은 같은 해 10월25일 여성 군무원 A씨와 말다툼을 벌이던 중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화천지역 북한강에 유기했다. 완전범죄를 꿈꿨으나 시체가 북한강 수면 위로 떠올라 들통나버린 것이었다. 양광준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내연관계가 들통날까 봐’.
감정이 담기지 않은 객관적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은 모든 기자들의 숙명이다. 하지만 사건·사고를 취재하다 보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꾸역꾸역 삭혀내기 어려운 상황이 수반된다.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입을 꾹 닫을 때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 세상이 무너지듯 절규하는 유가족들과 반대로 입을 열지 않는 가해자를 마주하면, 그의 입안에서 단 한 마디의 사과라도 꺼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한다.
양광준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할 기회를 잃었다. “피해자나 유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매번 침묵으로 일관하며 미움받을 용기를 내지 않았다. 양광준이 앞으로 보일 언행은 재판을 의식한 변호사의 조력으로 가공됐을 것이다.
양광준과 반대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미움받을 용기를 낸 경우가 있었다. 2024년 새해 첫날 발생한 장평충전소 LPG 연쇄 폭발 사고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이 사고는 2024년 1월1일 오후 9시3분께 용평면의 작은 산골마을인 장평리에서 ‘펑!’하는 굉음과 함께 액화석유가스(LPG) 연쇄 폭발한 비극이다. 새해 첫날 벌어진 이 사고로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24명의 이재민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 후 장평충전소 관계자 B씨가 피해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강하게 질타하는 피해자와 주민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직원을 현장에 투입했다가 사고가 났다”며 “불의의 사고로 피해를 입은 분들께 사죄드리며 보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용서를 구했다. B씨는 간담회 내내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떨구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미움받을 용기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해자나 책임자가 미움받을 용기를 냈다고 해서 면죄부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유족들이 평생을 시달릴 트라우마를 덜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자 인간다움이다.
사건·사고 취재를 담당한 지 햇수로 4년이 됐다. 그중 2024년은 강원도민을 경악하게 할 사건·사고가 가장 많았던 한 해로 기억된다. 지난해 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벌어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179명의 국민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게 된 대참사가 발생하면서 국민들은 좌절에 빠졌다. 이럴 때일수록 모든 책임자가 “죄송합니다”라는 사죄를 시작으로 미움받을 용기를 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피해자와 유가족, 더 나아가 국민의 비통함이 하루빨리 잠재워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