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호등]지방의회 무용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김현아 정치부기자

어딜 가서 도의회 출입기자라고 하면 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지방의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이다. 좀 더 강하게는 국회가 있는데 세금을 써가며 지방의회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광역의회, 기초의회 할 것 없이 지방의회라면 당연하다는 듯 따라붙는 ‘지방의회 무용론’이다.

‘지방의회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언론에서 본 지방의원들의 갑질, 막말, 음주운전, 외유성 해외출장 등을 근거로 든다. 하는 일 없이 의원으로서 권리만 누리려 한다는 것이다. 의원들과 관련한 각종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지방의회를 싸잡아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 상태에서 좀 더 대화가 진척되면 주제는 자연스럽게 ‘거수기 의회’로 넘어간다. 자치단체장과 같은 정당의 지방의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방의회가 제대로 된 견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실제 의회에서는 의원들이 집행부 사업에 대해 심의 과정에서 신랄하게 비판을 쏟아내고도 원안대로 통과시켜주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 강원개발공사와 중도개발공사 건이 대표적이다. 올 하반기 도의회에는 강원개발공사에 대한 현물출자 동의안과 행정복합타운 사업추진 동의안, 중도개발공사 295억원 출자 동의안 등이 연이어 접수됐다. 전체 의원 49명 중 42명이 김진태 지사와 같은 국민의힘 소속인 도의회는 향후 수천억 규모 재정 투입이 예상된다며 동의안 처리에 난색을 표했다.

관련 질의에 나선 의원들은 각종 문제점을 지적했고, 소관 상임위원회들은 예정에 없던 회의 일정까지 추가해가면서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결론은 통과, 통과 또 통과였다.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후세대 도민들의 비난을 피하긴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지방의회 무용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지방의회는 폐지돼야 할까. 사실 무용론자들의 주장은 지방의회를 절반만 알고 하는 소리에 불과하다. 지방의회는 주민 생활권에 가장 가까이 밀착해있는 대의기관이라는 점에서 대체불가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농어민, 학교 밖 청소년, 노인, 저소득층, 참전용사 등 취약계층을 위한 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국회에서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며 정쟁을 벌일지라도 전통시장 공영주차장 확보를 위해 골몰하고, 주민들이 반대하는 댐 건립을 막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방의회다.

이같은 지방의회의 역할은 탄핵정국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느닷없이 선포된 비상계엄으로 전국민이 충격에 빠졌던 지난 3일, 도의회에서는 내년도 강원자치도 예산안 본심사가 진행 중이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포고령에 도의회는 비록 몇시간이었지만 모든 절차를 중단하고 산회해야 했다. 다행히 비상계엄은 해제됐고, 혼란한 와중에도 도의회는 이튿날 곧바로 예산심사를 재개해 예정대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비상계엄 사태는 탄핵정국으로 넘어갔다. 중앙정치는 여전히 혼돈 속이다. 하지만 여의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도민들은 생계를 꾸려가야 하고, 교육 받아야 하며,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 국회가 시끄러워질수록 지방의회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정은 국회에서 이야기 될 것이고 지방의회는 민생을 지켜야 한다”는 김시성 도의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요즘이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피플&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