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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장 담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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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계신 집안 어른께서 만들어 보내주시는 된장은 하루 힘의 원천이다. 아침에 한 숟가락 떠 물에 풀고 호박, 고추, 두부를 썰어 넣고 끓인다. 밥 반 공기와 같이 먹어도 오전 내내 속이 든든하다. 오랜 세월 된장을 만들어 보내주시던 어른께서 올해 80대가 되며 몸이 약해지고, 더 이상 된장을 만들지 못한다고 하셨다. 별다른 반찬 없이도 아침을 든든하게 해주던 ‘그 맛’이 추억이 된다니 “한 세대가 저물어 가는구나” 싶었다. 된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콩으로 메주를 쑤어 소금물과 섞어 발효시킨 음식이 간장, 된장이다. 건조시킨 메줏가루에 고춧가루와 찹쌀을 섞으면 고추장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미각의 제국’에 따르면 좋은 된장을 만들려면 콩이 윤기가 있어야 하고, 물이 좋아야 하며, 가마솥에 장작불로 콩을 삶아야 한다. 간수를 뺀 천일염으로 달걀이 동동 뜰 정도의 염도에 맞춰야 한다. 옹기에 넣고 2년 정도 숙성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된장은 숨을 제대로 쉬어야 깊은 맛을 낸다. ▼이 깊은 장맛에 요즘 외국인 셰프들도 반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가 ‘고추장 버터 스테이크’를 만들었는데 수년 전부터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메뉴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이달 초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는 “한국인의 기본 양념인 장을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문화가 세대 간에 전승돼 오며 가족 간 유대감을 강화한다”며 “장 담그기라는 공동의 행위가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 ▼2024년 한 해, 한국 사회는 거칠고 험악했다. 보수와 진보, 지역, 세대, 남녀 등 다름은 곧 대립의 시작이었다. 서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도 매일같이 뉴스에서 보고 있다. 2025년 을사년에는 공통분모를 잊지 않는 해였으면 한다. 싸울 때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된장, 간장, 고추장의 깊은 맛을 즐긴다면 ‘우리’라는 말을 꺼내기 어색한 사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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