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평화로운 저녁, 한 줄의 속보가 놀라움을 안겼다. ‘한강’ ‘노벨문학상’ 머릿속에서 곧바로 연결되지 않는 두 단어가 잠시 낯설었다. 멍한 순간도 잠시, 기쁨이 몰려왔다. 나라 전체에 축하 분위기가 퍼졌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3일 밤10시28분, 두 달 전과는 딴판의 분위기로 믿기지 않는 단어가 등장했다. 아닌 밤중에 ‘이게 말이 되나’ 눈을 의심한 것을 시작으로 상황은 긴급하게 돌아갔다. 잠을 못 자서인지 충격이 컸는지 며칠째 멍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상상조차 못 해본 일들이 전개됐다. 역사책에서나 봤을까. 경찰이 국회 출입을 통제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고 무장한 군인이 국회 본관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 소화기를 뿌리며 계엄군의 본회의장 진입을 막는 보좌진들의 풍경이 꿈같았다. 새삼, 우리가 역사의 한 가운데 서있다는 자조 섞인 대화들이 이어졌다. 국회가 4일 새벽 1시1분 긴급 본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한 걸 보고 국민들은 한시름을 놓으면서도 두려운 밤을 보냈다. 이후 계엄 해제, 여야의 긴급 의원총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발의 등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서도 쉽게 현실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꿈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하고, ‘처단’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잠시나마 대한민국 주권자들의 목을 졸랐다. 유리창은 와장창 깨졌다. 다행스럽게도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달려 나온 국민들이 있었고, 국회는 민주주의의 보루로 남았다.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표결에 참여하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월담, 군인과 몸 씨름을 하다가 입은 한 강원 의원실 보좌진의 찰과상, 강원 곳곳과 전국에서 국민들이 엄중하게 전하고 있는 분노는 꿈이 아니었다.
많은 국민들이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상처는 한순간에, 스스로 아물지 않기 마련이다. 연고를 발라야 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수술·봉합을 하고, 재활도 해야 한다. 비상계엄 선포는 일어났고, 이제 중요한 건 대처다. 계엄이 해제됐다고 시민들이 곧바로 상처를 잊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사태가 오랫동안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게 될지, 잘 아물 수 있을지 결정된다. 하지만 벌써부터 책임을 회피하려는 움직임, 국민보다는 안위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정부와 여야는 어떤 것이 국민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는 일일지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이 위법을 저지르면서까지 계엄을 선포하는 일은 있어선 안됐지만, 그에 앞서 보여준 국회는 정쟁을 일삼는 모습이었다. 여야는 말로만 민생을 외치고, 각자의 입장만 관철하려는 듯 보였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주지 않았다.
한강 소설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급하게 찾아 읽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다소 헷갈렸다. 소설 속 현실과 꿈이 분간되지 않았다. 흐릿한 경계 속 어느 순간 선명해진 것은 제목이었다. ‘작별’을 할 수도 있지만, ‘않음’을 택한다는 것은 강한 의지로 다가왔다. 정국이 혼란스럽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입은 상처를 그냥 두어선 안된다는 것. 계속해서 지켜보고, 잊지 않겠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