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미술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51점의 회화작품을 다룬 책 ‘오직, 그림’이 출간됐다. 이 책은 미술평론가 박영택(경기대 교수)씨가 34년 동안 현대미술의 이론과 현장을 탐구하며 쌓은 깊이 있는 시각을 담아냈다. 이 책은 1세기 로마 시대 프레스코화부터 현대 작가 키키 스미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의 주요 흐름을 한 권에 엮어냈다.
박 평론가는 이 책에서 회화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말이 나오는 지금, 회화만이 지닌 고유의 매력과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책 속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서양미술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회화들로, 회화라는 미술 매체가 그려온 길을 조망할 수 있다. 특히 렘브란트, 피카소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부터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장 앙투안 바토와 막스 베크만의 작품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직, 그림은 회화를 단순한 평면의 이미지로만 보지 않고, 각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맞물려 탄생한 시각적 기록물로 해석한다. 르네상스 이후 회화가 재현에 주력하던 시기부터 사진이 등장해 재현의 의미가 퇴색되고, 이후 감정과 표현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회화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해 온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예를 들어, 벨라스케스의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화는 당대 초상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반면, 19세기 말 에드바르 뭉크의 붉은 집은 감정 표현에 중점을 둔 새로운 회화의 탄생을 상징한다.
책 속에서는 고전적인 회화 기법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등장한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추상 작품 무제를 비롯해, 프랜시스 베이컨과 데이비드 호크니가 시도한 새로운 형식의 구상화도 다루고 있다. 박 평론가는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대화하는 원형적인 역사 속에서 회화의 가치를 포착해냈다. 그는 회화의 가치가 단순히 한 시점에 멈춰 있지 않으며, 시대에 따라 새롭게 부활하고 변화하는 예술 형태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독자들이 서양미술의 거대한 흐름을 따라가며 그림의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는 마치 박 평론가와 함께 박물관을 거닐며 각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토의 애도, 마네의 폴리베르제르의 술집, 조르조 모란디의 정물 등의 작품에서는 구도와 인물 배치, 붓 터치 하나까지도 섬세히 분석해 독자들이 그림의 이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박 평론가는 “본다는 것은 단순히 망막에 비치는 상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기억과 연상, 감각기관이 반응하는 일”이라며, 그림이란 보이는 것을 넘어 인식하고 깨닫는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직, 그림은 그런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독자에게 회화의 매력을 복원해주는 안내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음산책 刊. 440쪽. 2만3,4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