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옥문학상 수상자인 춘천 출신 소설가 문진영의 새 소설 ‘미래의 자리’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깊은 상실감 속에서 위태로운 하루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래와 지해, 자람, 나래. 뜻하지 않게 벌어진 미래의 부재(不在)로 이들은 조금씩 일상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 지해는 한때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올랐던 소설가 지망생이지만, 무기력에 빠져 방 안에 갇힌 채 천장만을 바라보며 지내고, 첼리스트를 꿈꾸던 자람은 아버지의 사고와 가정 폭력으로 인해 대학 진학과 꿈을 포기하고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미래의 쌍둥이 자매 나래는 세상을 향한 모든 의욕을 잃고, 상실감 속에서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지해로 부터 “살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닫혔던 마음을 열며 미래가 남긴 일기를 통해 그녀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남아있는 세 젊은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붙들고 점차 상실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향한다.
이들 가운데 자람은 꿈을 잃고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마음으로나마 의지하는 공간을 ‘강릉’으로 삼는다. 그에게 강릉은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정의 목적지로 그려진다. 자람은 가정폭력과 개인적인 아픔을 버티며, 강릉을 향해 무작정 동쪽으로 달리는 여행을 반복한다. 하지만 강릉에 도달하는 일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강릉은 자람이 쉽게 도착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 현실의 문제를 잠시 잊을 수 있는 도피처이자 ‘더 나은 미래’의 은유로 그려진다. 강릉을 향하는 길에서 자람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일상의 무게를 덜어내고, 비록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했더라도 도로 위에서 그가 느끼는 순간의 해방감은 강릉이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소설 속 강릉은 단순한 지리적 배경을 넘어, 아픔과 고독을 감싸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 잡는다. 자람이 고속도로 위에서 혼자 강릉으로 달리며 느끼는 해방감은 단순한 도피나 일탈이 아닌, 그가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일종의 생존법이다. 강릉은 고된 삶의 끝자락에서 의지할 수 있는 마음의 피난처로 그려지며, 독자들에게는 언젠가 닿을 수 있는 이상적 공간으로 남는다. 이러한 점에서 강릉은 ‘생을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을 상징하며, 자람을 비롯한 인물들에게 삶을 버티고자 하는 의지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문진영은 이러한 강릉의 상징적 의미를 통해 강원도가 지닌 고유한 감성을 소설에 녹여낸다. 강릉은 대도시의 번잡함과는 대조되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통해 치유의 의미를 더하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람과 지해, 나래에게 마음의 고향이자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삶의 거점으로 자리 잡는다. 특히 자람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강릉을 향한 여정을 통해 발견한다. 그런 강릉은 자람이 꿈꿨던 삶을 떠올리게 하며, 고통 속에서도 조금씩 나아가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상징한기도 한다.
자람의 손에 이끌려 일터에 나선 지해는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음을 느끼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래는 미래의 흔적을 통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내일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된다. 자람은 자신에게 첼로 레슨을 듣는 민서를 통해 미래를 꿈꾸며, 강릉에서 데리고 온 고양이를 돌보면서 타인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문진영은 작가노트에서 “돌아보니 내가 지금 여기 살아 있는 건 결국 기댈 수 있는 이들의 존재 덕분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런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소설이 미약하나마 어떤 인력이 되기를 바라면 썼다”라고 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작가가 그걸 해냈다는 걸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