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양 하조대(河趙臺)에 간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3곳 있다. 하조대 정자와 하조대 등대 그리고 하조대 전망대가 그것. 하나 더하자면 2019년에 조성된 하조대 전망대 둘레길이 있다. 물론 하조대해수욕장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할 것이다. 오늘의 메인 목적지는 당연히 하조대 등대 둘레길이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하조대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정자와 등대를 굳이 건너뛰겠다는 생각은 비추(非推)다. 둘레길을 다 걸었을 때 고개를 들면 보이는 그곳. 그곳에서 보는 경치 또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절경들이다.
◇사진 위쪽부터 하조대 정자, 애국가 소나무, 하조대 등대, 큰 사진은 하조대 전망대 둘레길.
■순서는 정자→등대→전망대→둘레길
차 안. 동해고속도로 위에 있다. “어디부터 가볼까” 서로 가까운 곳에 자리한 정자와 등대를 먼저 만나보고, 그런 다음 조금 거리가 있는 전망대로 이동. 그곳에 올라 동해바다의 풍경을 조망한 후 곧바로 이어진 둘레길을 걷는 코스를 머릿속에 그렸다. 차는 달리고 달려 바다보다 먼저(?) 강(광정천)을 곁에 두고 또 얼마를 더 달려 첫 기착지의 입구에 도착한다. 언뜻 보면 삼거리인데 사거리인 갈림길이다. 그대로 전진하면 하조대 정자와 등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고, 좌회전하면 하조대 전망대, 전망대 방향으로 가다 좌측으로 나 있는 다리를 건너가면 하조대 해수욕장이다. 볼거리, 즐길 거리가 몰려 있는 곳이다. 그러니 둘레길 하나만 보고 돌아가기에는 아까운 곳 아닌가. 알파벳 ‘D’ 모양을 닮아 있는 ‘하조대 명승지’ 조형물을 통과하고는 바로 절경맞이 카운트 다운이다.
■현실감 제로(ZERO) ‘절경’
5... 야트막한 언덕을 향한 경사로로 시작되는 이 길(조준길)은 곁가지 없이 그냥 외길이다. 하조대 정자와 전망대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4... 물론 길 옆으로 뜬금없이 군 휴양소와 군부대, 유격장의 진입로가 튀어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런 곳에 군시설이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하조대 풍경의 일부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없다는 현실은 아쉽기 이를 데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군(軍)의 휴양시설이면 더 그렇다. 3... 그 사이 어느새 하조대 관광안내소 부근 주차장에 도착. 차를 얼른 세우고는 곧바로 길 위에 오른다. 그리고 하조대 정자 vs 등대 이정표 앞에서 정자 방향으로 몸을 튼다. 2... 계단을 타고 산 위로 오른다. 그대로 솔숲 산책길이다. 멋스러운 그 길에서는 피톤치트가 가득 뿜어져 나오는 중이다. 하나, 둘... 육십여섯 계단에서 좌회전 다시 이십 계단 정도를 더 오르고 후~ 한숨 돌리면 언덕 정상. 그리고 바다를 향해 이어지는 길 양옆의 나무울타리를 따라 올라가니 그 끝에 정자가 보인다. 1... 바로... ‘하조대’ 정자다.
멀리서 보면 그리 특별할 것 같지 않은 모습인데 다가갈수록 우아한 자태에 탄성이 튀어나온다. 0... “우와~” 잠깐 스친 수평선을 보고도 감탄하던 이들에게 이 풍경이 얼마나 대단하게 다가왔겠는가. 거두절미. 일단 정자 안에 올라보라고 했다. 예상대로 또 다른 강도의 감탄사들이 튀어나온다. 정자의 기둥과 기둥을 사진틀 삼아 눈앞에 생생하게 인화되는 절경의 향연이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로 진하게 다가온다. 어디 그뿐인가. 정자를 나와 정자의 오른편 곡선을 타고 걷다 보면 이곳의 핫 스폿(Hot spot), 애국가 영상에 등장하는 일명 ‘애국가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기암괴석 위에 올라앉아 200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니 멋스러움과 경이로움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그 모양새는 누군가 정성 들여 꾸미고 가꾼 분재(盆栽)처럼 정제되고 정갈한 모습이다. 정자 주위를 빙 둘러싼, 그림에서나 봤을 법한 명품 소나무와 그 사이로 비치는 일렁임 가득한 바다의 풍경은 가히 일품이다.


■해안절벽 조망 포인트는 ‘등대’
발길은 언덕 아래로 향한다. 내려오자마자 이내 등대 가는 길로 접어든다. 소나무 터널에 들어선다. 그리고 이내 등장하는 나무 데크로. 그 길을 따라 걸으려는 찰나 오른쪽 아래로 파도의 현란한 변주(變奏)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목적지인 등대의 하얀 끄트머리가 보이는데 파란 하늘과 녹색의 소나무 사이에서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도드라진다. 등대로 향하는 나무 데크로는 그리 길지 않지만 절벽에 걸터 앉은 잔도(棧道)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바다 조망이 훌륭하다. 얼마를 걸었을까. 하늘을 향하는 계단 앞에 도착한다. 그 계단을 금방 지나치지 못하고 중간 즈음에서 발걸음이 또 멈춰진다. 계단을 디디고 딱 열여섯 발자국. 왼편으로 근사한 풍경이 주르륵 펼쳐진다. 하늘를 찌를 듯 날카로운 돌산의 비범한 기세가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계단을 오를수록 그 풍광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계단 정상. 비로소 쪽빛 바다와 돌산이 시선 안에 함께 들어온다. 하조대 정자에서 보던 뷰(View)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우회전. 길 끝에 하얀 등대가 보인다.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 그런데 등대와의 만남이 채 끝나기 전에 그 뒤로 펼쳐지는 풍경에 말문이 닫힌다. 이곳에 올라오기 전 발걸음을 붙잡은 수많은 풍경들은 그냥 예고편에 불과했다. 동해바다의 풍만한 정취가 눈 안으로 가득 들어온다. 눈길은 자연스레 하조대 정자가 있는 방향으로 옮겨지는데 바다를 굽어보는 해안절벽의 자태가 마치 출정을 앞둔 장수(將帥)의 비장함과 닮아 있다. 거기에 바다를 비추는 햇살이 파도에 부서지고 또 흩어지는 장면까지 더해진다. 이내 장엄함이 엄습한다. 그리고 잊고 있던 솔향이 코 끝을 찌른다.

■수석(壽石), 분재(盆栽) 즐비...자연의 솜씨에 감탄
마지막 목적지인 하조대 전망대와 둘레길에 오르기 위해서 일단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어촌계 회센터를 지나 어느새 하조대 전망대 입구. 돌산 위로 나 있는 계단. 그 위로 우주선 모양의 전망대가 보인다. 계단을 꾹꾹 밟고 올라가 하늘에 더 가깝게 다가서 본다. 우주선 위에는 하얀 등대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으로 스카이 워크까지 있다. 바닷바람 한 움큼 베어물고 심호흡 크게, 그리고 바다를 바라본다. 등대 앞에서 바라본 쪽빛의 바다는 어느새 옥빛으로 낯색을 바꿔버려 오묘한 느낌을 준다. 그 위에 올려진 작은 돌섬들은 잔잔한 파도의 일렁임에 속아 마치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는 것 같다.
계단을 내려와 그대로 직진. 하조대 전망대 둘레길에 들어선다. 가슴이 탁 트이는 청량함이 몰려온다. 동시에 돋보기를 들이댄 것처럼 바위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데크길을 따라 도열한다. 그 모습은 흡사 거북이의 등껍질과 같다. 이 길에서도 해송이 곁을 지키며 따라 붙는다.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바위들의 조화는 그대로 수석(壽石)이고, 바닷바람 한껏 맞은 해송의 자태는 그대로 분재(盆栽)다. 인공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자연이 만들어 낸 솜씨에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둘레길은 그리 길지 않아 어느 정도만 걸으면 그 끝이 보인다. 그 곳에는 아담한 백사장이 보이는데 군 휴양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더 이상 갈 수는 없다. 만약 저 시설이 공개가 되고 둘레길이 저 앞을 지나쳐 하얀 등대 아래 어디쯤, 정자 앞 애국가 소나무 아래 어디쯤까지 연결되면 정말 대단할 텐데. 생각해 본다. 하조대 전망대 둘레길 끝자락에서 그 너머를 바라보며 짧은 걷기 여행을 매조지한다.